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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Sep 08. 2021

도시락 바꿔 먹기

잘 먹었어!

매주 화요일마다 '도시락 바꿔 먹기'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도시락 바꿔 먹기는 우리 반 선생님만의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자신이 맡은 반 아이들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는 날, 선생님의 도도한 자태가 떠오른다. 볼륨감을 한층 살린 헤어스타일과 흐트러짐 없는 선생님의 단정한 옷차림은 4학년 1반의 품위를 드높였다. 어마 무시하게 크고 또렷한 눈빛으로 선생님은 우리의 도시락 바꿔 먹기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싸온 도시락 반찬을 아무도 먹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구경하며 보냈던 화요일 점심시간을 희미하게 그려본다. 도시락 바꿔 먹기 날이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안타깝게도 설레서 두근거리는 건 아니었다. 엄마가 싸준 반찬을 보고 짝꿍이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짝꿍과 도시락을 바꿔먹는 날도 있었고, 앞뒤 책상을 붙여서 도시락을 모아놓고 반찬을 나누어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짝꿍이었던 남자아이와 도시락을 바꿔 먹게 되었다. 얼굴이 유난히 까무잡잡했던 남자아이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도시락을 내게 주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계란말이와 함께 있던 나물 반찬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어릴 때 편식이 심했던 나는 시각적으로 낯선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편이었다.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늘 호기심을 잡아 삼켰다. 선생님은 되도록이면 도시락을 남기지 말고 먹도록 지도했기에 나는 그 순간이 참말로 괴로웠다. 익숙하지 않은 반찬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억지로 씹었다.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 내 입에 한참을 머물렀다. 매가리 없는 내 도시락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 해도 나의 그런 마음을 짝꿍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짝꿍은 내 도시락이 먹을만했을까? 엄마가 한 음식에는 늘 뭔가 빠져있었다. 대체로 싱겁고, 윤기가 없었다. 충분히 소금을 치지 않았고, 참기름과 깨를 넉넉히 두르지 않았다. 식재료를 아끼려고 그런 건지, 아낄 재료조차 없어서 그런 건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건강한 맛과는 또 결이 달랐다. 음식을 하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하기로 결정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엄마에게 미안하지만 그때 엄마의 음식은 그랬고, 지금도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 같으면 도시락을 바꿔 먹었으면 '잘 먹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가정교육을 잘 받고 사는 어린이처럼, 꽤 발랄한 성격을 가진 아이처럼 말해보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도시락을 비우기 위해 각자 노력했다. 도시락을 돌려주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은 그런 나이였다. 이성 친구와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이상으로 우정을 쌓을 수 없는.

도시락에는 내 조마조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 반찬을 누군가 베어 먹는 순간 그만큼의 불안이 친구의 식도를 지나 사라졌다. 얼굴이 까무잡잡했던 짝꿍이 내 불안을 삼키면, 나는 난감한 얼굴로 그 아이의 불안을 삼켜야 했다. 우리가 그 시절 바꿔먹은 건 '도시락'이 아니었다. 우리가 바꾼 건 그 시간에 느끼는 '각자의 감정'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도시락 바꿔 먹기'를 좋아하는 척 일기를 썼던 나는 왜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조마조마한지 모르겠다. 뭔가 빠져있는 매가리 없는 내 도시락을 먹으면서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끔 우리 반에게만 특별한 날이었던 '도시락 바꿔먹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함께 했던 점심시간이 이렇게 아득하게 멀어질 줄 모르고, 우리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꼭꼭 삼켰다.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꼭꼭 삼킨 것들이 가끔 기억으로 튀어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가 우리에게 남긴 소박한 문장들처럼. 


4학년 1반 친구들아, 화요일의 도시락 바꿔 먹기를 기억하고 있니? 우리가 서로의 반찬을 나눠먹으며 자란 11살은 참 특별했어.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겠지. 나는 그때보다 더 많은 반찬을 먹을 수 있게 되었어. 여전히 편식을 하지만 말이야. 그때 못한 말이 있어. 


너의 도시락 잘 먹었어! 오늘 점심 반찬은 뭐야? 

우리, 바꿔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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