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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Sep 16. 2021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매만지는 기분

수봉공원 계단 어디쯤

수봉공원은 내게 특별한 공원이다. 1990년대 그곳에는 비둘기집, 약수터, 놀이공원, 배드민턴장 등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둘기는 꽤 대접을 받는 동물이었다. 심지어 비둘기 모이를 팔았다. 모이를 바닥에 뿌리면 비둘기가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지금과는 달랐다.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비둘기의 모습을 자주 구경했다. 한낮의 여유로움이 그 순간에 잠시 머물렀다.



가끔 빈 통을 들고 아빠와 동생, 사촌들과 함께 갔었던 약수터도 좋았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느라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는 것도 잠시 다시 꽤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약수터가 나왔다. 약수터에 있는 손잡이가 긴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로 약수를 떠서 한 모금 마시면 고단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졌다. 약수에서는 늘 단맛이 났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약수를 마시고, 빈 통을 약수가 내려오는 곳에 받쳤다. 빈 통이 가득 차는 것을 확인하며 약수터 주변을 맴돌았다. 온통 나무로 가득 찬 그곳에서의 시간은 잠시 모든 것을 잊게 했다. 무거워진 통을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때 공원은 기억이 가물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봉공원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수봉놀이동산'이었다. 허니문카, 범버카, 다람쥐통, 바이킹, 하늘 자전거, 귀신의 집, 오락실 등이 있었던 수봉놀이동산은 모든 것이 축소되어 담겨 있는 미니어처 놀이공원 같았다. 주로 명절이나 친목회가 있는 날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면 우리는 코스처럼 수봉놀이동산으로 향했다.

자신의 취향대로 놀이기구를 탔다. 사람이 많아도 규모가 작은 탓인지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허니문카나 하늘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좋아했다. 스릴보다는 경치를 즐기는 어린이였다.


가끔 다른 시도를 하긴 했었다. 귀신의 집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입장을 감행하기도 했다. 비명은 입구에서부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짜 귀신이 등장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표정을 잘도 지었다.


가짜인 걸 알면서도 왜 매번 놀라는 걸까.


어두컴컴한 실내에 빨간 조명을 받으며 조악스럽게 서있는 형체 모를 것들을 나는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거의 눈을 감은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스로 내딛으며 입장료에 준하는 공포를 체험했다. 그 짧은 귀신의 집 코스를 돌고 나오면 돈을 내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했을까 싶어 준비된 비명이 원망스러워졌다.


'으, 어지러워!'


용기를 내서 다람쥐통을 타고나서 하차했을 때, 바로 속이 울렁거렸다. 긴 멀미를 짧게 압축해놓은 기분마저 들었다. 360도 회전하는 다람쥐통은 나의 용기를 가장 빠르게 후회스럽게 만들었다. 다람쥐통을 타고나서 30초도 지나지 않아, 당장 내려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손짓이 보일 리가 없을 정도로 다람쥐통은 데굴데굴 쉴 새 없이 굴렀다. 어쩌면 다람쥐도 탈 수 없는 놀이기구였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다람쥐통을 타지 않으리 다짐했고, 그 다짐은 잘 지켜졌다. 가끔 빠르게 회전하는 다람쥐통 안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때의 울렁거림을 회상한 적은 있었다.


하늘 자전거를 탈 때면 공중에 뜬 기분에 마음까지 들뜨곤 했다.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시간은 분명 천천히 흘렀다. 내릴 때가 다가오면 늘 아쉬웠다. 누군가는 재미없어하는 놀이기구였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동네가 좋았고, 놀이공원 바깥을 돌며 사람과 바람, 구름, 하늘,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매만지는 기분이 좋았다.  


여럿이 간 놀이공원에서 사촌 동생 한 명은 자신의 돈을 아끼겠다고 같이 왔음에도 구경만 했다.


그럴 거면 따라오지 말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와는 달리 사촌 오빠는 자신의 용돈으로 그 아이의 놀이공원 이용권을 사주었다. 지금도 인정이 많은 사촌 오빠이기에 그때 그의 행동은 자신의 천성에 충실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사촌오빠의 마음씨만은 대단했다고 여겨진다. 놀이공원 이용권을 얻은(받은) 아이는 자신이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다는 얼굴로 놀이기구에 탑승해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용돈은 그대로 아끼고, 남의 돈으로 놀이기구까지 탔으니 자신의 전략이 꽤 좋았다고 착각할 만했다. 물론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용돈이 얼마 남지 않으면 신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위해 우리는 비둘기집 앞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시합하듯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그렇게 높아 보였던 계단도 결국 편편한 땅에 닿아 있었다. 그때쯤 사촌 동생은 주머니에 꼭꼭 숨겨둔 자신의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의 합법적 쾌락인 놀이기구 타는 즐거움까지 포기한 용돈이 사라진 것이었다. 사촌 동생은 울지 않았지만 수선스러운 분위기는 집에 가는 내내 계속되었다. 나는 그 꼴을 보는 게 싫었다. 그날 사촌 동생이 잃어버린 돈은 오 만원이었다. 고모는 그 금액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사촌동생이 잃어버린 돈 때문에 난리를 쳤던 모양이었다. 고모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성가심 때문인지 그 액수 그대로 아이에게 주었다고 회상하며 그때 지었던 표정을 다시 짓는 것 같았다.


주머니가 텅 빈 날에는 배드민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무작정 수봉공원에 올라갔다. 수봉공원 계단을 3분의 1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배드민턴장이 있었다. 동호회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배드민턴장은 늘 잘 정돈되어 있었다. 초반에는 동생, 아빠와 함께 갔다. 그때만 해도 아빠는 날렵한 몸으로 우리가 치는 공을 잘 받아냈다. 배드민턴은 아빠와 함께 했던 유일한 스포츠였다. 어느 정도 배드민턴을 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동생이나 친구와 함께 갔다. 우리는 돌아가며 배드민턴을 쳤다. 배드민턴 공의 깃털 부분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브를 했다. 공이 오고 가면 우리의 몸은 저만큼 달렸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흙먼지를 일으켰다. 공이 바닥에 닿기 전에 툭 하고 받아내는 순간의 희열은 우리를 계속 그곳에 머물게 했다. 그 어떤 목적도, 정해진 시간도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만큼, 배드민턴을 실컷 쳤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체력을 소진시켰다. 그래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처럼 걷고, 뛰고, 세상을 관찰했다.


언제나 즐거울 것만 같았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늘 어디에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수봉공원에 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시들해졌다. 수봉공원에 있는 '수봉놀이동산'은 이제 운행을 하지 않는다. 나도 수봉공원에 간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제물포에서 동인천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수봉공원과 확실히 멀어졌다. 멀어졌다 해도 여전히 수봉공원은 내게 특별하다. 그곳에서 함께 걷고, 뛰고, 웃었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높은 곳에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지금보다 작은 몸으로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우리의 어떤 날들이 그곳에 늘 남아있을 것만 같다.


수봉공원 계단 어디쯤, 내가 밟았던 발자국이 형체 없이 남아 있겠지?


아쉬움을 모아, 그리움을 모아,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마음을 모아, 그곳에 가고 싶다. 그때를 추억할 준비가 된 얼굴로 말이다. 그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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