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젼정 Aug 12. 2021

희경이의 방

그것은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는 아늑함이었다.

희경이가 자신의 집에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희경이네 집 대문은 내가 사는 주인집 대문보다 크고 화려했다.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부잣집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잔디가 있는 마당, 현관을 거쳐야 보이는 거실과 주방, 집안에 있는 화장실, 친구 희경이네 집은 내겐 충격이었다.

희경이의 방은 우리 네 식구가 지내는 단칸방 보다 컸다. 자신의 집을 자연스럽게 거니는 희경이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희경이의 방에는 책상 두 개와 피아노, 장난감이 등이 있었다. 그 나이에 필요한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방이었다. 대낮의 햇살은 희경이의 방을 따스하게 비췄다. 그것은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는 아늑함이었다. 다리를 쭈그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화장실과 세면대를 경험한 순간, 우리 집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던 아홉 살, 나는 내 인생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2층으로 가는 나무 계단도 있었지만 그곳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희경이는 설레는 얼굴로 자신의 방을 소개하며 나와 같이 놀 것들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희경이의 장난감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노는 시늉을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게 당연히 없는 것들이 희경이에게는 당연히 있었다. 결국 단칸방으로 돌아가야 할 내 처지를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구나. 우리 집은 왜 단칸방에서 네 명이 자야 하는 걸까? 나는 벌을 받고 있는 중인가.


나는 우리 둘이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의 집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아이처럼 삐쩍 마른 얼굴을 하고, 필요한 말들만 주고받았다. 별 거 아닌 일들로 쉽게 웃는 또래 아이들과 우리는 달랐다. 우리는 꽤 진중한 어린이들이었다.


희경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내겐 없었다. 있고, 없는 것을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희경이의 아빠는 조각가였다. 왜일까? 나는 아빠가 조각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빠들은 매일 술을 마시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당에 있는 조각상도 희경이 아빠의 작품이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조각상들이 마당에 두세 개 있었다. 나는 그 조각상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수도꼭지 근처에 받아놓은 물이 잔디 근처로 찰랑였다. 무표정한 희경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 집을 구경했다. 집은 조용했다. 가족들은 다 외출한 모양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서둘러 집에 갈 채비를 했다. 희경이네 집 대문을 빠져나와 길가에 있는 집들을 바라보았다. 희경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집들을 지나치기만 했을 것이다. 그 집에 세 들어 살지 않는 이상 내가 그런 집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가 더 이상 친해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희경이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희경이와 더 친해지기 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녀가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받은 충격을 희경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방보다 작은 공간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희경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희경이와 멀어지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희경이와    하교를 함께 했다. 희경이는 변함없이 진중한 얼굴로 나를 대했지만 나는 그럴  없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갈림길에 서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으로 삶을 옮겼다. 희경이가 아빠가 만든 조각상 곁을 맴돌며 마당에서 뛰어노는 동안, 나는 단칸방을 자욱하게 채운 담배 연기를 그대로 맡아야 했다. 아홉 살이었던 나는 희경이에게  감정을 설명할  없었다. 네가 가진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순간순간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다행히 희경이도 나와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동네를 지나가면 희경이의 방이 생각난다. 아무도 없는 희경이의 방을 서서 바라보던 그때의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이전 01화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