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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Oct 22. 2021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에게

이 순간 또한 삶의 작은 반짝임이 아닐까

얼마나 컸는지 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성장했던 시절,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었던 시절, 그렇게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 같았던 그 시절의 우리가 문득 그리워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과 멀어진 지금에서야 그 시절의 나와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불속에서 보던 디즈니 만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만화방과 오락실, 수봉공원에서 즐기던 놀이기구와 배드민턴, 명절이면 문이 닳도록 드나들던 큰아버지댁과 희망문구사, 밸런타인데이에 받았던 사탕과 편지, 친구와 바꿔 먹었던 도시락, 학교 앞 분식점에서 논스톱을 보며 먹었던 김치볶음밥, 아빠가 버스에서 내게 했던 말, 엄마가 썼던 가계부, 좀도둑이 온 줄도 모르고 잠든 동생의 모습, 다 잊은 줄만 알았던 그때를 천천히 기록했다. 모든 게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상처를 받는 줄도 모르고 상처를 받았던 시절,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고 상처를 주었던 시절의 우리는 그 순간이 어떤 식으로 기억될지 아무도 몰랐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에게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상처가 되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엇갈림이 되었을 때, 밤마다 베개에 가로누워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먹고, 듣는다. 아주 오래전 본 것을 선명히 기억하기도 하고, 그 시절 먹었던 음식의 맛을 혀끝에 담아두기도 하고, 스치는 말을 낚아채 머릿속 작은 서랍에 고이 넣어두기도 한다. 흔히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한다. 돌이킬 수 없지만 우리는 아무 때이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세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추억의 교집합이 존재한다. 그 추억 어딘가에는 이름을 잊은 얼굴과 얼굴을 잊은 이름들이 남아 있다. 마음에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기에 하나씩 꺼내 쓸 수 있었다. 그 마음은 아프기도 했고, 짠하기도 했고, 뜨겁기도 했다. 텅 빈 노트 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나와 우리를 기록해보길 바란다. 그때의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이 순간 또한 삶의 작은 반짝임이 아닐까. 


잘하고 있어!


그때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대체로 불행하지 않았나 생각했던 그 시절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글을 마무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순간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이라도 쓸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돌이킬 수 없는 시절들이 흘러가고 있다.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립다면, 이제 다음 장을 넘기면 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서랍 속 작은 물건이 당신을 그리로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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