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그 무엇보다도 선명한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선을 품고 살아간다.
툭- 희미한 선을,
찍- 가느다란 선을,
쭉- 도톰한 선을,
쭈욱- 길게 뻗은 선을.
툭-찍-쭉-쭈욱.
어떤 선은 면이 되기도 한다.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선을 그려놓고, 상대가 그 선을 넘지 않을 정도로만 내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선 넘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에게 내가 얼마큼 도달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로 우리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기도 하고, 살짝 넘어보기도 한다. 어떤 이의 선은 쉽게 지워진다. 어떤 이의 선은 더 진해진다. 선은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다. 나는 그 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건 내 선을 밟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상대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적당히, 안전하게 지내는 것은 허락하지만 내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당히, 안전하게 지내는 일은 꽤 어렵다.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면서 친해지기 원하는 마음은 더욱더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그 선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사람의 선이, 불편한 관계에 놓인 상대의 선이 어떤 형태인지 때때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대견하게도 이 어려운 일을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해내고 있다.
모든 관계에는 다시 선을 그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일 때도 있고, 더 이상 가까워지기 싫어서 일 때도 있다. 나는 누군가의 선을 밟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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