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우리에게
봄, 여름 내내 시간을 내어 쓴 글들을 묶어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이 책은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보통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주제를 정해서 매거진을 발행하다가 브런치북을 만든다. 그런데 나는 도통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일단 쓰면서 찾아보자 했는데 의외로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 그 답이 있었다.
지난하게 지나온 시간들이었기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절대 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늘 말해왔는데 그 안에서 작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가난한 나의 어린 시절에도, 삶에 찌든 어른의 시간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텅 빈 시간에 놓인 우리의 시간에도 아주 작게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돌이킬 수 없는 우리들의 시간을 기록했다. 내 삶을 스친 얼굴 모를 이름과 이름 모를 얼굴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수능 100일 전,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 구석에 앉아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100일 뒤, 각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시험은 아무래도 좋으니 내가 원하는 과에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수능은 당연히 개판으로 보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과에 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나는 대체로 내가 쓴 글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잘 쓰는 사람과 써도 되는 사람을 내 멋대로 구분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카테고리 안에 나를 넣지 못했다.
이토록 사적인 글을 누가 궁금해할까?
두려웠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았다. 겉으로는 그러지 않겠지만 속으로 ‘쟤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척’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졌지만 마음 한편에 뭐라 설명하기 힘든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건 다시 가기 힘든 여행지에서 망설이다 사지 못한 기념품 같기도 했고, 살이 찔까 봐 참고 먹지 않은 칼로리 높은 음식 같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들을 후회하며 살아왔다.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못해서 후회한 것들이 더 많은 현실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나를 조금씩 뒤에서 밀어 본다. 걷기 힘들면 엉금엉금 기어가서라도 해보라고 나에게 알맞은 다독임을 속삭이며, 눈치를 보며 그렇게 해보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연습, 내가 쓴 글을 내가 사랑하는 연습, 나는 그런 것들에 용기를 내보는 중이다. 우리가 삶의 교집합에 함께 서 있는 순간을 꼼꼼히, 자세히 들여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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