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바닥에 내린 1피스의 눈송이

미완의 퍼즐 게임

by 젼정

결혼은 100피스의 퍼즐을 99피스로 완성시키는 게임 같다. 완성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해나갈 수밖에 없는, 미완의 퍼즐 게임을 우리는 하고 있다. 연애 6년, 결혼생활 10년이면 제법 잘 맞는다고 할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보란 듯이 잘 지내다가 별 것도 아닌 일로 쉽게 삐걱거린다. 견고하고 단단하게 잘 고정되어 있다고 믿었던 액자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릴 때, 우리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귀부터 막는다. 서로 맞물려야만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숙명적이라고 믿었던 사이는 작은 충격에도 동작을 멈춘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애쓰지 않고도 계속 행복할 수 있겠다고 확신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갈등이 찾아온다. 작은 갈등은 낭만적인 눈송이였다가 이내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 동그란 눈덩이는 만지면 만질수록 망가진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해왔던 것들이 아무렇게나 밟힌 눈처럼 형체를 잃어간다. '사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얀 눈'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모든 것은 순식간에 모습을 달리한다. 그런 관계의 허무함을 확인하는 날에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어 진다.


이건 절대 완성시킬 수 없는 퍼즐이야!


사랑하는 마음이 아득해져 갈 때, 각자의 부족함은 발가벗겨진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랑은 '결혼'과 동시에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다. 분명 '사랑'을 쓰고 있었는데 그 사랑은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그제야 알아간다. 가족이 되었으니 화를 머리끝까지 내본다. 양보를 강요해본다. 사랑해서 견딜 수 있었던 것들을 더 이상 견디지 않기로 작정한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달래지는 마음을 이제는 받아주지 않기로 한다. 상대가 좋아했던 것들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가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집중한다.

이 정도면 금방 완성하겠다 싶었는데, 우리가 이만큼이나 함께 해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퍼즐은 예고도 없이 그림을 제멋대로 바꿔놓는다. 그림이 바뀐 줄도 모르고 모르고, 우리는 각자 다른 그림 퍼즐을 맞추기도 한다. 아이가 있으면 퍼즐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우리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아이를 위해 공평하게 희생할 것을 자로 잰다. 한쪽이 더 많은 희생을 하면 다른 한쪽이 '고마워'라고 말하지 않고, '그건 당연한 거야'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긴다. 물론 퍼즐 그림이 바뀐 것을 함께 눈치챈 부부는 반대로 말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우리는 인간 내면에 깔린 본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편히 자고 싶고, 쉬고 싶고, 먹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된 인간은 억눌린 욕구들에서 속에서 튀어나온 예민함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처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다음에는 그것마저도 익숙해진다. 잘못된 상황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퍼즐 그림은 자주 바뀌기도 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힘든 순간을 힘겹게 지나갈 뿐이다. 그 순간에는 퍼즐 조각을 모조리 바닥에 쏟아내며 자신이 더 힘들다며 한탄하는 여유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맞추는 퍼즐에는 모든 것이 넘쳐난다. 웃음도, 눈물도, 짜증도, 즐거움도, 늘 평균 이상으로 유지된다. 적당한 희생이 서로에게 배분되면 우리는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이 지난한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우리는 퍼즐 맞추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00피스가 있어야 완성되는 퍼즐을 99개로 완성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낭만적인 눈송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다가 단단한 눈덩이가 되어 내게 던져진다 해도, 우리는 그 순간의 낭만으로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1피스를 잠시 손에 쥐어본다. 손바닥에 소리 없이 내린 하얀 눈송이가 녹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결혼으로 자취를 감춘 사랑을 손바닥으로 움켜쥔다. 손바닥에 흔적 없이 스민 눈송이가 가볍다. 1개의 퍼즐 조각을 영영 찾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결국 함께 있기를 원하고, 억눌린 욕구 속에 고개를 든 사랑을 보듬기를 원한다.

이 미완의 퍼즐 게임에는 규칙과 비밀이 하나씩 숨어 있다. 규칙은 '반드시 함께 맞춰나갈 것'이다. 비밀은 100피스의 퍼즐이 가끔 99개의 퍼즐로 완성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완성은 찰나적이기에 지나서야 알게 되는 성질을 지녔다. 소박한 저녁 밥상에 모인 가족들의 대화 속에 느껴지는 온기, 산책길 자연스럽게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따스함, 상대가 걷어찬 이불을 조심스럽게 다시 덮어 주는 다정함, 그런 찰나가 미완의 퍼즐을 순간적으로 완성시킨다.


떨어진 액자를 함께 들어 다시 제자리에 건다. 더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눈이 내릴 것 같다. 손바닥에 내린 1피스의 눈송이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또 그렇게 나란히 서서 함께 하는 겨울을 그려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