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될 서사가 필요해
'개그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웃기는 타이밍'에 도달했다. 대화는 사뭇 진지해졌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하지 않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웃긴 것도 마찬가지야. 타고나는 게 중요하지."
인간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 결국 더 우세하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남편은 제법 괜찮은 농담을 잘한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체로 적절한 타이밍에 실력이 발휘된다. 남편의 농담에 아이는 자주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아빠처럼 재미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의 모든 말이 다 웃기지는 않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쏘는 양궁 선수처럼 그의 말은 때와 장소에 맞게 상대에게 날아간다. 남편의 농담에는 세련미와 촌스러움이 적당히 섞여있다.
"당장 크게 웃기지는 않지만 결국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개그를 하는 사람들이 롱런하는 것 같아.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를 쓰면서 웃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자극적인 소재로 잠깐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자신의 색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평범한 언어로 재치 있게 대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대를 효과적으로 웃기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웃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웃기려고 작정하지 않음으로써 허를 찌른다. 반대로 자신이 굉장히 웃기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남편의 말에 의하면) 늘 오버하게 된다. 웃겨야 된다는 강박감은 더 센 언어와 과장된 행동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웃기지 못하고 우스운 사람이 되고야 만다. 사석에서 웃기지만 정작 웃겨야 할 자리에서 웃기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사석에서만 할 수 있는 말들이어서 못 웃기는 것이라면 그 말들에는 분명 불편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비난하면서 웃기는 것, 남들이 나서서 하지 않는 성적인 농담을 쿨해 보이는 얼굴로 내뱉는 것, 상대가 웃지 않으면 상대가 웃음 포인트를 모른다면서 비난하는 것, 그런 것들을 이용한 사람들의 농담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농담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낫다.
"사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질 때가 많아. 정말 저 작가는 레벨이 다르구나, 타고난 재능을 가졌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 보면 어쩔 수 없이 또 배경을 알게 되잖아. 그 사람의 가정환경, 학력, 경력 그런 것들 말이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이래서 작가가 되었구나'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더라고."
"그럴 수 있지."
남편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봐. 아무래도 내 인생에 '작가가 될 서사'가 없는 것 같아."
"그건 되고 나서 만들어도 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이런 생각을 했어. 보통 유명한 작가들이 인터뷰에서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대답할 때 말이야. 뻔하게 나오는 대답들이 있거든. 그게 나한테 해당이 전혀 되지 않을 때 '역시 나는 안 될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나도 그들과 비슷한 성장과정이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한 두 가지의 배경을 갖고 있었으면 하는데 그렇지도 않잖아. 그럼 나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기분이야."
그들과 같지 않고 싶은 동시에 나는 그들이 되고 싶다. 유명한 작가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운명처럼 그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앞서 타고난 재능이 그들에게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괴롭게 한다. 나도 안다. 이건 열등감이다.
열등감.
몹시 괴로운 상태로 나를 몰아넣기에 충분한 명사다. 무엇이 되지 않은 것을 배경 탓으로 돌리고 싶은 잡스러운 핑계다.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열망은 나를 가장 빠른 속도로 보잘것없는 상태로 만든다. 무엇이 되고 나서 만들어도 되는 의미 없는 고민을 나는 만들어서 하고 있다.
"천천히 해봐. 급한 건 아니니까."
남편의 말이 반반 치킨처럼 들린다. 타고난 재능은 없을지라도 해보는 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는 뜻인가. 곧이곧대로 들으면 될 것을 나는 꼭 어떤 말들을 파헤치려고 든다. 그래도 그 말이 결국 맛있게 느껴져서 이내 안도한다.
"지금 당장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대화의 열기가 서서히 식는다. 대체로 미온적인 태도로 사는 내가 이 직업과 어울리나. 적절한 타이밍에 내뱉는 재치 있는 농담처럼, 내 글이 그럴 수 있나. 무엇이라도 되면 이 열등감은 사라지나. 나는 나를 한없이 낮추어 밑바닥으로 끌어내고 웃기게도 글을 쓴다. 자신감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열등감으로 쓰는 글에 피식 웃어본다.
모든 것은 때와 장소를 잘 만날 때 빛난다. 타고난 재능도 아무런 수고 없이 빛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수고 없이 재능부터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나는 안다. 글이 나를 빛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글을 빛나게 해야 한다. 열등감이 있는 인간은 자신이 잘 되는 것조차도 조바심을 낸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열등감에게 문장을 던진다. 데굴데굴 굴러간다.
작정하지 말고, 허를 찌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