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말캉거림
아이로 인해 시작했던 뜨개가 이제 취미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만든 뜨개 결과물을 보고 칭찬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덧붙인다.
"난 이런 거 못 해."
엄마가 집에 남아 있는 뜨개실을 주면서 뜨개를 해보라고 했을 때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3년 전쯤의 일이다.
"엄마,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엄마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이는 내게 실뭉치를 안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저히 아이 앞에서 못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노력'이라는 단어를 외면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동영상을 보며 코 잡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정말 무한 반복이었다. 역시 난 이런 거 못한다는 생각도 반복해서 했다. 거의 새벽 3시까지 나는 뜨개 기초를 연습했다. 지금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슬 뜨기가 그 당시 내게는 출구 없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밤늦게까지 뜨개를 했다.
기다랗고 가느다란 실은 애초에 그런 형태였을까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뜨개는 정직했다. 늘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날에는 틀린 부분까지 다시 되돌아가거나 아예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은 뜨개를 계속해나가면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이에게 괜찮은 부모인 척 그럴듯하게 말했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나 스스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나는 마음 수련이 필요할 때면 뜨개를 한다. 코바늘을 하다가 대바늘을 하고, 카드지갑을 만들고, 모자나 가방을 만들기도 한다. 늘 해왔던 것들이 아닌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마음가짐을 연습한다. 처음에는 이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를 만들고 나면 또 다른 걸 해보고 싶어 진다. 물론 부족한 실력을 마주할 때는 여전히 머리가 쨍해진다.
이걸 틀렸다고? 다시 해야 한다고? 대충 넘어갈까?
한참 진행한 뜨개를 몇 번이고 풀어낸다. 도안을 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뜨개를 할 때면 커피도 잘 마시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차가운 커피에 둥둥 떠있는 얼음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앞으로 가다 헤매다를 지난하게 반복한다.
뜨개를 하며 쏟아지는 말들을 아낀다. 적당한 속도감을 찾는다. 실력에 걸맞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 쓰기 위해 마음에 담아두어야 하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 몰입 속에서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으니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좋고, 머리는 머리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으니 제법 그 시간이 괜찮게 느껴진다. 깊은 밤, 나는 혼자 거실에 남아 그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잰걸음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킨다.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써서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을 다독인다.
이쯤에서 밝혀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뜨개를 우아한 모습으로 즐기고 있지 않다. 그건 정말 오해다. 뜨개를 시작하면 내 모든 것을 그것에 바치는 나로 인해 몹시 힘들다. 분명히 시작은 이렇지 않았다. 천천히 즐기기로 한 뜨개는 어느새 내 모든 것이 되어 있다. 뜨개를 시작하면 뜨개가 내가 된다. 사람이 된 뜨개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뜨개 중심의 생활은 다소 웃기다. 뜨개로 마비된 나의 일상을 찾고 싶다.
밥 챙겨주고 뜨개 해야지!
집에 가서 뜨개 해야지!
누구 안 만나고 뜨개 해야지!
아이 재우고 밤에 뜨개 해야지!
이 사이에는 ‘부족한 실 사러 가야지’만 끼어들 수 있다.
마감 날짜도 없는데,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뜨개가 대체 뭐라고!
내가 왜 이럴까. 최근 조끼를 뜨는데 쏟은 시간을 생각하면 기분이 살짝 아찔해진다. 초보가 실수 없이 뜨개를 완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 역시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틀린 부분이 있어도, 많은 시간을 쏟아도, 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위해 어떤 시간을 내놓아야 하는지를 나는 뜨개를 통해 배운다.
마무리 단계, 실 정리를 하고 조끼에 단추를 달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나를 돌보는 과정이 내겐 꼭 필요하다. 그럼 그 사이 정리된 마음은 빈 서랍처럼 깨끗해진다. 그렇게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 지고, 쓰고 싶어 진다. 말의 속도와 마음의 온도가 나란히 걷는 기분이다.
조끼를 다 만들고 나니 얼마 전 맛보았던 수제 캐러멜이 생각난다. 하나 사서 길에서 입에 쏙 넣는 순간의 부드러운 말캉거림, 적당한 달콤함이 떠올라서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난 뜨개가 완성되어 갈 때쯤 말캉거리는 마음을 안다. 기분 좋게 단맛을 내는 수제 캐러멜과 그 마음은 닮았다.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그곳에만 있는 것, 그런 것들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로 매길 수 없다. 나는 시간으로 쌓아 올리는 가치를 만들고 싶다. 노력하면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다.
조끼를 다 완성했다. 이제 이 글을 완성하고, 부드러운 말캉거림을 만끽해야겠다. 창문을 활짝 열고, 말캉한 마음에 가을바람을 덧입혀 마지막 문장을 완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