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승자가 되길 원한다.
나는 경쟁이 싫다. 왜 꼭 경쟁을 통해서 나를 증명해야 되느냐고 묻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브런치북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계속 쓰고 있다. 계속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꽤 열심히 쓰고 있다. 경쟁은 싫지만 공모전에 참여해야 하는 이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고, 솔직히 돈도 벌고 싶다. 꾸준히 쓰는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한 번쯤은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끝까지 다 봤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영화 '기생충'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영화 '기생충'은 삶의 단면을 여러 각도로 대비해서 보여준다. 높은 곳과 낮은 곳, 밝은 곳과 어두운 곳,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디쯤에 있는가 생각해 보게 한다. '기생충'은 사전적인 의미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영화 '기생충'의 시작은 없는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덧붙여서 살아가는 삶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부자들 또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꽤 고귀한 척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은 모두에게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히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추악함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른 삶을 연기하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쉬워 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급 사회에 속해 있지만 그 계급 사회에 들어갈지 말지는 본인이 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부동산 투자가 그렇다. 이것을 게임이라고 가정해 보자.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참여자들끼리 꾸준한 투기를 통해 혼란을 조장할 뿐이다. 그들이 어느 정도 물을 흐려놓으면 어떤 이들이 나서서 그런 행동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이 눈에 보이는 이득을 취하기 시작하면 비난하던 사람들이 태세를 전환하여 참여자가 된다. 참여자들이 많아지면 비참여자를 바보처럼 여긴다. 오징어 게임처럼 과반수가 이 게임을 주도한다.
무한 경쟁사회라고 하지만 ‘경쟁’을 알레르기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그 경쟁을 그저 재미나 당연한 결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수많은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이 그렇고, 공모전이 그렇다. 그것들에는 다 돈이 걸려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가지려고 하는 돈,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돈, 아무 죄 없는 돈이 있다. 참여하는 것만으로 의의를 두기에는 1등과 참여자의 몫은 확연히 다르다. 결승전에 다다를수록 사람들의 감정은 격해진다. 특히 눈앞에서 1등을 놓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1등을 한 사람보다 그 순간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2등이 더 대단해 보일 때도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온 게임들은 어린 시절부터 목적 없이 했던 놀이들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어린 시절 우리는 승자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놀았던 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을 뿐이다.
줄다리기에서 전략적으로 힘을 모아 이긴 누군가와 그들은 구슬치기에서 적이 된다. 유리 징검다리에서는 인간의 마음 제일 밑바닥에 깔린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유리 징검다리에서 앞서 간 사람들은 두려움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앞세워 확실한 살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앞사람을 밀고서라도 안전한 길로 가길 원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함께 추락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징검다리는 우리가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쫓는 형태와도 매우 비슷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대로 살면 나 자신도 성공에 이르리라는 착각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 길은 혼자서 갈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나와 그들의 경험 또한 방패가 될 수 없다.
이 드라마에서 기훈(이정재)은 별 볼 일 없는 인간의 군상을 대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는 그 누구도 기훈을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그의 인간미는 경쟁보다 먼저인 삶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와 함께 일 때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잠시 이탈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어린 시절 무엇을 해도 재미있었던 것처럼, 경쟁 없이 놀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브런치에 이토록 드나드는 건 나의 삶의 궤도에서 잠시 이탈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모전 시작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분명 경쟁 없이 이곳에서 글을 쓰며 서로를 다독였다.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오징어 게임 참가자와 마찬가지다. 그들이 오징어 게임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듯이, 브런치도 우리에게 작가 신청을 강요하지 않았다. 제 발로 이곳으로 걸어 들어온 셈이다. 오징어 게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참여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이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로 작가 승인을 받아야 조건이 갖추어진다. 오징어 게임 초반, 초대받은 사람들은 게임의 룰을 듣고 마음을 바꿔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현실을 마주한 많은 이들은 다시 스스로 처참함이 예상된 이 게임에 목숨을 걸고야 만다.
이곳에서 글쓰기가 가능한 브런치 작가들에게 이 게임은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경쟁은 싫지만 우리 대부분은 '브런치북 출간 게임'의 승자가 되길 원한다. 456명의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본 떨어지는 돈다발을 상상해본다. 브런치는 우리에게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발적인 경쟁은 또 시작되었다. 이제 재미는 뒤로 미뤄두고, 치열하게 쓸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나는 이제 옷을 갈아입었다. 안내 음성이 들려온다.
브런치북, 출간 게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