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밥솥

by 젼정
압력밥솥 : 용기 안의 압력이 높아지도록 뚜껑을 밀폐할 수 있는 솥. 스테인리스나 알루미늄의 두꺼운 재료로 되어 있고, 뚜껑에는 안전밸브가 장착되어 있어 일정 압력 이상이면 자동으로 밸브가 열려 증기가 빠진다. / 네이버 국어사전


팝콘처럼 튀겨진 밥알을 보았는가.

나는 보았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열 살인가, 열한 살인가, 그때쯤 생긴 일이다. 엄마의 부엌은 자그마했다. 그 공간은 '주방'이라는 단어보다 '부엌'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잘 어울린다. 부엌에서 계단을 하나 오르면 방, 방에서 계단을 하나 내려가면 부엌인 집에서 우리는 살고 있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 위에는 민트색과 하얀색 작은 타일이 번갈아 가며 붙어있었다. 우리 가족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그 계단은 살짝 높게 느껴졌다. 그 계단을 오를 때면 내 다리는 자동으로 높아졌다.

부엌은 한 사람이 겨우 서서 음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부엌 천장에 달린 희미한 불빛은 요리를 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엄마가 한 요리는 그 희미한 불빛과도 어쩐지 닮아 있었다. 음식이 끓고 있는 동안 희미한 불빛이 집에 어울리는 음식의 맛을 조절했는지도 모른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압력밥솥 추가 요란스럽게 춤을 췄다. 적막한 집도 그 시간만 되면 온기가 돌았다.


찰캉찰캉. 압력밥솥 뚜껑에 달린 추는 처음에는 우아하게 춤을 추다가 이내 탭댄스로 음악을 바꿨다. 엄마는 시간을 재지 않고도 언제 불을 꺼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언제 불을 꺼야 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시간은 대체로 살짝 빠르거나 늦었다. 압력밥솥은 춤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제대로 열 받을 때까지 발에 불이 나도록 춤을 춰야만 했다.


불 꺼라.


가끔은 엄마 대신 내가 불을 껐다. 10분 이상 뜸을 들이고 나서야 압력밥솥은 제 역할을 끝낼 수 있었다. 압력밥솥의 추가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늘 거슬리긴 했지만 우려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도 압력밥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밥을 짓고 있었다. 압력밥솥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나와 동생은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밖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왔던가 싶다. 부엌을 지나고 있을 때, 압력밥솥의 추가 탭댄스로 음악을 바꾸려고 몸을 풀고 있었다.


으악!


그때였다. 압력밥솥 뚜껑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내 종아리를 스치고 압력밥솥 뚜껑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놀란 엄마는 부엌으로 뛰어나왔다. 나도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어떻게 된 일이지?'


팝콘처럼 튀겨진 밥알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특히 천장에 붙은 밥알들은 참 볼만 했다. 그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부엌 구석구석 붙은 밥알은 눈물 같았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참아왔던 눈물, 참아왔기에 터질 수밖에 없었던 눈물, 울지 않고도 늘 울고 있었던 눈물이 그날 오후 자그마한 부엌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밥알들은 끈적하게 벽에 붙었다. 쉽게 그치지 않을 눈물 같은 밥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엄마는 내가 괜찮은지부터 확인했다. 아빠는 뒤늦게 그 이야기를 듣고, 밥을 하는데 왜 나를 부엌에 있게 했냐며 엄마 탓을 했다. 누구 탓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살았고, 부엌은 엉망이었다.


왼쪽 종아리 아랫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랐다가 물집이 잡혔다. 병원에 갈 정도로 심한 건 아니었다고 판단된 그 상처 위에 밴드를 붙이고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렸다. 물집은 어느 날 터졌고, 밴드 모양으로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는 네모난 밴드 모양 안에 갇혀 있었다. 네모 안에는 작은 점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상처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 상처는 오래갔다. 교복 치마를 입고 종아리를 거울에 비춰볼 때마다 상처는 남아 있었다. 언제 없어졌는지, 어디였는지 지금은 확인할 수 없게 되었지만 꽤 오랜 시간 나는 그 상처를 보며 부엌 천장에 붙어있던 비현실적인 밥알들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결국 살 운명이었던 건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엄마와 나는 웃으면서 그때 이야기를 했다. 그때 압력밥솥이 내 머리로 날아왔다면 내가 살아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말이다. 그것이 가난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지금은 아니다. 그저 압력밥솥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생겼을 확률이 가장 크다. 하필이면 내가 그 순간 부엌에 있었던 것뿐이다. 지금은 그 일이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게 그 사건은 가난이 안겨준 비참한 사건 중 하나였다. 좋지 않은 상황이 덮어쓰기 될 때 우리는 비참해진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느끼는 절망감과 패배감은 쓰린 마음을 반복해서 베고 지나간다.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될 일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아이로 자라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별 것 아닌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 그 일들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에 압력밥솥은 너무 뜨겁고 무거웠다. 엄마는 어땠을까. 내 종아리에 생긴 상처를 자세히 돌볼 틈도 없이 엄마는 밥알로 엉망이 된 부엌을 수습해야 했다. 압력밥솥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것이 엄마 탓이라 해도, 엄마에게 잘못을 확인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작은 부엌에서 엄마가 부단히 애쓰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엄마의 부엌은 너무 작고 희미했다. 이런 부엌에서 뭘 만들어내겠느냐고 엄마가 투덜거려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엄마의 부엌은 시시했다. 그런 부엌에서 만든 밍밍한 음식을 먹고도, 나와 동생은 자고 일어나면 조금 더 자라 있었다. 어떤 날에는 분명 해맑게 웃기도 했다.


압력밥솥 뚜껑이 내게 날아오는 순간 나는 저절로 움츠러들었던 몸의 방어를 기억한다. 살았다. 작은 타일 조각이 붙어 있는 시멘트 계단을 밟았던 발바닥의 감촉을 떠올려본다. 차갑고, 미끄러웠던 계단을 밟고 올라가 앉아 있었던 작은 방 한 칸, 그 안에서 본 세상이 지금의 나를 여기로 데려다주었다.


어딘가에서 압력밥솥 추가 찰캉찰캉 소리를 내면 여전히 나는 움츠러든다. 소리가 끝나면 나는 생각한다.


눈물이 그쳤다.



압력밥솥 : 쉽게 그치지 않을 눈물 같은 밥알이 담겨있었던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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