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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y 27. 2022

실없는 대화가 가능한 사이

우리의 버디버디

돌이켜 보면, 나는 대화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마주 보고 하는 대화보다는 채팅을 더 선호했다. 만나서 하는 대화는 어쩐지 친해지기 전까지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불편하게 느껴졌다. 고3 때 나와 버디버디에서 매일같이 만나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웃음이 눈가에 먼저 번지는 그 친구와 나는 학교에서는 그리 붙어지내지 않았는데 버디버디에서는 자주 함께였다. 그 친구 닉네임 옆에 불이 들어와 있으면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 불빛에 의지했던 마음이 분명 있었다. 그 가상세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어떤 일에도 진지해지지 않았다. 진지한 이야기도 웃으면서 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친구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또 다음 날이면 할 말이 생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컴퓨터를 켜면 버디버디에 나와 그 친구만 있는 날도 많았다. 우리는 아파트 경비원처럼 그 시절 그 밤을, 자그마한 불빛으로 지켜냈다. 그 화면은 우리가 각자 다른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다. 새벽 3시, 4시까지 각자 버티다가 인사만 하고 사라진 날도 많았다. 그 친구와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버디버디 속에서 대화로 쌓은 내적 친밀감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는 실없는 대화가 가능한 사이였다. 그 시절 그 친구와 나눈 수많은 마음의 활자들이 그리워진다.


어떤 이는 내가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 이미 지나간 인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그 친구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 만나면 또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사람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서 자꾸 이런저런 말들을 채팅하듯이 쓰는 것 같다.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때 스스로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다. 친해지기 위해 거쳐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정들 속에서 나는 대면함으로써 소진될 수밖에 없는 에너지를 느낀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말을 하면 생각의 일부가 닳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나쁘기만 하진 않다. 뱉어낸 말로 생긴 빈 공간에 새로운 생각을 채우면 되니까.


실없는 농담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내게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나는 상대에게 그런 존재일 수 있을까.


상상한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관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가끔은 시간이 뒤틀려 잠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도 그 친구에게 나는 안부를 갑작스레 물을 수도 있다. 괴상한 웃음을 채팅창에 치면서 말이다.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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