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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21. 2022

우리 동네, 하소연 분식점


우리 동네, 마트 앞을 지키던 분식 트럭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분식 트럭에서는 떡볶이, 김말이, 고추가 들어간 매운 김말이(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중독성이 강하다.), 각종 튀김, 떡꼬치, 소떡소떡, 어묵, 호떡 등을 팔았는데 대체로 맛이 있어 인기가 좋았다. 매일 열진 않았지만 열기만 하면 분식 트럭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근처에 있는 분식점은 너무 맵거나 싱거웠다. 어른이 먹기에 괜찮다 싶으면 아이에게는 별로였고, 아이에게 괜찮다 싶으면 어른에게 별로였다. 그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곳이 분식 트럭이었다. 맛있는 분식점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점상이라 그런지 가격도 꽤 합리적이었다. 


언젠가부터 분식 트럭 아줌마는 장사의 어려움을 손님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같은 노점상이면서 분식 트럭 아줌마에게 거기서 장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느니, 지속적으로 누가 신고를 한다느니, 분식 트럭 아줌마는 손님들에게 하소연을 시작하면 꽤 그 내용이 길어지곤 했다. 가끔은 하소연을 하면서 마음이 풀렸는지 서비스로 꼭 뭐 하나를 더 챙겨주기도 했다. 

노점상이 합법적인 건 아니지만 어느 동네라도 자리를 차지하는 노점상이 있다. 평소의 나라면 '노점상을 하면서 저런 소리를 하면 가게 하는 사람들이 황당할 텐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테지만 분식 트럭 아줌마의 하소연은 이상할 정도로 들어주게 된다. 결국 분식 트럭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는 것을 포기했다. 맛이 있는 편이라 열기만 하면 손님이 모여들었으니, 그 꼴을 보기 싫은 사람도 당연히 있기 마련일 것이다. 지속적인 신고를 피해 분식 트럭 아줌마는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장사를 했다. 정말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도서관 가는 길에, 산책하는 길에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분식 트럭을 발견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분식 트럭을 만나면 언제나 지갑을 열었다. 


계속되는 신고를 견디지 못한 분식 트럭 아줌마는 노점상을 접고, 결국 송현시장에 가게를 차렸다. 동네 아는 언니의 제보로 남편과 함께 그 가게를 찾아 나섰다. 정말이었다. 트럭이 아닌 시장 안에 가게가 있었다. 익숙하게 짧은 인사를 나눈 다음, 우리는 떡볶이와 김말이, 매운 김말이, 호떡을 샀다. 언제부터 여기서 장사를 하셨냐고 하니 또 하소연이 시작된다. 합법적으로 장사를 해야 맞긴 하지만 맛에 대한 만족 때문인지 나는 분식 트럭 아줌마가 하소연을 시작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자기한테만 유독 너무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상하게 이해가 간다. 건드릴 수 있는 노점상과 건드릴 수 없는 노점상이 따로 있는 건가. 논리를 빼고, 그냥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분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한서림 앞에서 팔던 오징어 튀김이 떠오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었던 전설의 오징어튀김! 나는 그 당시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2층 카페에서 테이블을 닦다가 오징어튀김 아줌마가 보이면 무조건 달려 나갔다. 그곳 오징어튀김은 오징어도 튀김옷도 늘 먹던 맛이 아니었다. '야들야들 바삭'이 아니라 '야들야들 담백 고소'의 풍미가 있었다. 길거리 음식이지만 분명 레벨이 달랐다. 주문을 하자마자 기름에 튀겨지는 오징어튀김, 하얀 봉지에 가득 담기는 오징어튀김, 그곳은 열기만 하면 순식간에 완판이 되는 반짝 노점상이었다. (실제로 오징어 튀김만 팔았다.) 간장을 살짝 찍어 입안에 넣으면 입안은 오징어튀김으로 따스하게 데워졌다. 하얀 봉지는 금방 그렇게 비워졌다. 오징어튀김 아줌마는 또 언제 나오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이를 먹었고, 이제 더 이상 그 오징어튀김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식 트럭 아줌마가, 아니 시장 분식점 아줌마가 동그란 호떡 반죽을 달궈진 기름에 누르며 내게 하소연을 하는 순간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다. 어쩔 때는 일부러 내가 아줌마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하소연을 듣고 싶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면 시장 분식점 아줌마는 동그란 안경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언니야, 나한테만 너무 한 것 같아."


"그래도 잘된 일이죠. 이렇게 가게를 하시니까. (이제 안 찾아다녀도 되니까.)"


이제 분식이 먹고 싶으면 송현시장에 가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한결 놓인다. 여기저기 가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제 시장에서 장사한다고 신고하는 거 아니야?"


우스갯소리를 남편에게 건넨다. 온기가 가득 담긴 검정 봉지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웃는다. 아줌마의 하소연을 들은 사람이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을까. 그 불법적인 귀여운 하소연은 이제 끝이겠지만 또 다른 말이 그곳에서 만들어지겠지 싶다. 역시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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