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에 있어?

by 젼정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하다. 중심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바깥을 맴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뜨개를 할 때는 책 읽기에 마음이 저만치 가 있고, 책 읽기를 할 때는 글쓰기에 가 있고, 집안일을 할 때는 또 다른 일들에 마음이 미리 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보낸다는 게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마음이 자꾸 딴 데 가 있다. 가려던 곳에 가면 또 다른 곳에, 다른 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곳을 생각한다.

늘 미련을 뚝 떼어놓고 서 있다. 온전히 그 마음인 채로 서 있기가 어렵다.


이게 걸리고, 저게 걸리고,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조금씩 해나간다. 그다음엔 나를 기다려 주었던 다른 일을 하면 된다.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천천히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며 나아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성공을 위해서 선택하지 않는다. 내 선택은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성공이기도 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 과정이 도덕적일 것,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신념을 저버리지 않을 것, 그런 것들로부터 부끄럽지 않은 삶 안에 존재하는 마음은 한낮의 볕과 함께 흘러가는 윤슬처럼 반짝거린다.


이런 내 마음이 늘 좋아 보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뜨개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걸 대체 내가 왜 하는 걸까. 누가 알아준다고. 돈도 안 되는 거 이제 그만할까. 스스로 한심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꽤나 팍팍하게 군다. 뜨개가 완성될 쯤이 되면 그런 감정들은 거짓말처럼 잠시 잊힌다. 없어지진 않는다. 완성된 것들에 가려질 뿐이다. 서툰 실력으로 완성되었다 해도 괜찮다. 반복된 고통을 껴안은 기쁨이 집안에 흐른다. 흐르는 기쁨은 다시 나를 거실로 불러들인다. 엉덩이를 착 붙이고 앉게 만든다.

글쓰기도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글을 쓰며 마음 한편에 늘 그만두라는 말이 맴돈다. 타인이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늘 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다림질이 덜 된 셔츠처럼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 문장들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완성된 글에 물을 뿌리고, 뜨거운 온도로 누른다. 희미하게 구겨진 주름이 반듯하게 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또 콩팥에 가 있다. 쓰기로 결심한 소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침을 먹고 해놓지 않은 설거지거리가 마음에 걸린다. 어젯밤까지 뜨던 모칠라 가방이 눈에 거슬린다.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이어서 보고 싶기도 하다. 그 사이에 세탁기에 빨래라도 좀 넣어야 되는 거 아닌지, 물걸레 청소기를 좀 돌려야 되는 건 아닌지, 저녁 메뉴는 무엇을 준비해야 좋을지, 마음이 자꾸 여기에서 저기로 달아난다.


지금 어디에 있어?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그 어디에도 있지 않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가 있다고, 거기에 가 있으면서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까.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귓가에 흐른다. 나는 또 그 노래 가사에 마음을 싣는다.


어디에 있어?


나는 대답 대신 노래를 흥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