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 버린 것

by 젼정


놓친 게 아니다. 놓아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놓인 상황 때문에 그런 선택했다고 핑계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 또한 내가 한 것이다. 뻔한 대화, 배려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상대의 태도에 질려 평소와는 다르게 모진 말을 했던 것, 먼저 연락할 수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싫어 더 멀어지도록 내버려 둔 것, 좋게 말하지 않고 마음 아픈 말을 골라서 내뱉었던 것, 놓쳤다고 말하기엔 비겁했던 행동들이 떠오른다. 나와 상대의 관계 그 사이에 놓인 부담과 의무감이 싫어서 그랬다. 놓아주고 싶었다. 반복된 피로감에 지친 마음을, 그렇게 놓아주고 싶었다.


동네에서 늘 많은 짐을 메고, 들고 다니는 여자를 가끔 본다. 그 여자는 집을 나오면서도, 들어가면서도 늘 그런 행색이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무겁고 많은 짐을 들고 다닌다. 그 무엇도 버릴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여자는 주렁주렁 많은 것들을 자신의 몸에 매달고 살아간다. 여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 안에, 손목에 매달린 검정 봉지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여자는 자신의 팔을 짐을 드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다. 적어도 밖에서는 그래 보인다. 조금만 짐을 덜어내면 좋을 텐데, 그 여자와 마주칠 때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때로는 일부러 놓아 버린다. 그렇게 많은 것들과 멀어진다. 멀어지는 것들이 형체를 잃을 때까지 나는 그저 가만히 서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여자의 손목에 걸려 있던 검정 비닐봉지 자국도 사라질 것이다. 무거움도, 가벼움도 없는 어딘가에서 우리는 그렇게 사라져 가는 순간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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