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마음

by 젼정


마음에 비주류가 있다면 그 마음을 수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는 이면이 있다. 밝은 마음이 보이는 그대로 밝기만 할까. 그늘진 마음이 언제나 어둡기만 할까. 밝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도 그늘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정면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이면을 보여준다. 매우 드물게 정면과 이면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음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모든 면을 보여줄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주류와 비주류를 느낀다. 주로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주류가 된다. 주류는 많은 것들을 주도한다. 비주류는 조용히 다른 세계에서 마음을 키운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비주류가 주류로 역전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주류와 비주류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는지는 불분명하다. 대중적인 것이 주류에 가깝다고 설명할 수 있다면, 대중적인 마음의 수치는 어떤 것으로 설명 가능할지, 역시 어렵다. 비주류가 덜 주목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비주류는 사람들에게 덜 이해받는다고 해야 할까. 역시 애매하다.


어떤 부분을 정면으로 내세울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밝고 명랑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정면에 내세운다. 그런 면을 보여주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밝은 말을 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기분에 휩싸인다. 대체로 그런 세계에서 늘 살아왔기에 당연히 밝고 명랑할 수밖에 없는 표정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타고나길 밝아 보이는 사람을 동경한다. 그래서일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살짝 위축되기도 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면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정면에 내세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멜랑콜리한 마음은 한번 찍으면 그걸로 끝인 필름 카메라와 닮았다. 작게 말린 필름을 장난감처럼 생긴 핑크색 플라스틱 카메라에 넣는다. 딱 한 방이 남았을 때, 실수로 누른 촬영 버튼처럼 멜랑콜리한 마음은 순식간에 그 안에 갇힌다. 인화된 사진을 받기 전까지 마지막 한방에 대한 실수를 생각한다. 마음은 필름 카메라에 담긴 사진처럼 다양한 색감으로 일렁거린다.


사람마다 분위기가 다른 건 주류가 되는 마음의 비중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마음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라 할 지라도 언제나 자신에게 날아든 감정은 새롭다. 십 대가 사십 대의 기쁨을 이해할 리 없고, 사십 대가 칠십 대의 슬픔을 헤아릴 수 없다. 나이뿐만이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모두 다른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상황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로 인해 다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어 거기 그대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 장면에서 웃는 수 없는 마음도 있고, 누군가에게 생긴 기쁜 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알 수 없이 서글퍼지는 마음도 있다. 완전한 행복과 슬픔이 존재할 수 없듯이, 완전한 마음도 없다. 마음은 물기가 많은 하늘색 물감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평화롭다가 이내 힘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요란스럽게 군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마음이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잊은 줄만 알았던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기쁘고, 신나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주류의 마음이라면 슬프고, 지루하고, 불안하고, 치졸한 마음이 비주류라고 할 수도 있을까. 긍정적인 사고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 말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인정한다. 그러나 마음은 그런 것들로만 존재할 수 없다. 부정적인 단어를 긍정으로 포장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에게 그대로 드러낸다거나 표현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비주류의 마음에게 말을 건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꼭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마음,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의 발에 치여 찌그러진 캔처럼 버려진 마음을 때로는 들여다봐야 한다. 그 상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을 떠밀어서는 안 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라고 말한다. 정말 우리는 그래야 한다. 비주류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한 번쯤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마음을 펼쳐놓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하지 못하는 불청객처럼 우두커니 어떤 날에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한 번쯤 그 마음을 대면하면 어떨까. 그 마음을 버티고 견뎌 나아간 삶이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어떨까. 그 말들을 차곡차곡 모아 비주류의 마음을 수집하면 어떨까. 그저 그런 마음으로 나는 비주류의 마음을 수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