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앞서 걷던 남편과 아이가 빨간 신호등을 마주한 자동차처럼 이내 걸음을 멈췄다. 강아지 때문이었다. 아이는 몇 년 전 시골에서 남의 집 강아지를 약 올리다가 그야말로 줄행랑을 친 경험이 있었다. 목줄을 달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시골 강아지는 불청객에게 적당히 겁을 주는 것으로 짧은 외출을 끝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아지가 아이보다 인생을 더 살아서 그런 아량이 있었나 싶다. 그날 이후 아이는 강아지를 보기만 하면 내 등 뒤로 몸을 숨겼다.
동네에서 마주친 강아지의 목줄은 미용실 공장 파머 머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붙잡고 있었다. 목줄은 할머니의 손목에 두어 번 감겨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비슷한 파머 머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 더 계셨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 보였다. 동그랗고 큰 눈, 금방이라도 눈물을 와락 쏟아낼 것 같은 얼굴을 한 시츄는 할머니를 계속 앞서 걸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목줄을 당겼고, 시츄는 걸음을 멈추길 반복했다. 그렇게 걸음을 멈춘 건 시츄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앞 놀이터는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언제나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그네가 비어 있다면 고민할 겨를도 없다. 아이는 그네를 향해 냅다 뛴다. 그날 그네는 비어 있었지만 아이는 평소처럼 냅다 뛸 수 없었다. 시츄가 먼저 할머니들과 함께 놀이터에 자리를 잡았다. 시츄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목줄을 놀이터 기둥에 헐겁게 묶고, 어린아이들이 타는 흔들기구에 몸을 실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가벼운지 어린아이를 태운 것처럼 흔들기구가 가볍게 앞뒤로 흔들렸다. 그 모습은 흡사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았다. 할머니의 파머머리가 꽃잎처럼 부드럽게 바람에 올라탔다.
흔들기구는 할머니에게 꼭 맞는 옷 같았다. 아이들이 타는 건 봤어도, 할머니가 타는 건 처음 봐서 그런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할머니들도 저런 걸 탈 수 있구나, 저런 걸 타고 싶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선을 다른 곳에 떨굴 수가 없었다. 그 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뚱이야, 이리 와. 태워줄게."
흔들기구에 몸을 맡긴 할머니가 시츄 이름을 불렀다. 이름이 '뚱이'구나 생각하면서 쳐다보았더니 정답을 알려주는 것처럼 시츄 목 펜던트에 새겨진 이름 '뚱이'가 눈에 들어왔다. 펜던트에서 할머니의 뚱이 사랑이 느껴졌다. 혹여나 잃어버려도 이름이 있으니 한결 찾기 쉬울 것 아닌가.
할머니가 뚱이를 부를 때 아이는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남편이 어찌나 그네를 세게 밀어주었는지 까딱하다가는 공중에서 붕 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밀어달라고 할 땐 언제고, 아이는 아빠가 너무 많이 밀어서 무서운지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그러는 건지, 싫어서 그러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괴성이었다.
"뚱이야! 이리 와봐!"
"싫어요. 무서워서 타기 싫어요."
뚱이 대신 옆에 있는 할머니가 대답했다. 뚱이는 그저 멀뚱한 자세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할머니는 뚱이를 부르고 대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대답은 매번 뚱이가 아닌 옆에 있는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결국 뚱이는 주인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흔들기구에 올라갔다.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흔들기구를 흔들려고 하자 뚱이는 발버둥 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할머니는 뚱이 이름을 부르며 그럼 미끄럼틀을 타자고 했다. 목줄을 잡아당겨도 뚱이는 요지부동이었다. 할머니는 뚱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미끄럼틀을 타러 올라갔다. 미끄럼틀은 계단 네다섯 개만 올라가면 탈 수 있었다. 다른 미끄럼틀에 비해 경사가 완만한 편이었다. 할머니가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할머니 미끄럼틀 탈 테니까 잘 봐봐."
미끄럼틀에 올라간 주인 할머니가 뚱이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별걸 다 한다."
다른 할머니가 흔들기구를 타며 말했다. 뚱이는 가만히 서서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 말대로.
"아! 이건 무서워서 안 되겠다."
나는 할머니가 어떤 표정으로 노란 미끄럼틀에서 내려올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할머니는 미끄럼틀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미끄럼틀을 포기하고 내려온다니 어쩐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도 미끄럼틀을 신나게 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아이처럼 명랑하게 놀이터를 즐기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더 눈에 더 담고 싶었다. 내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시츄의 목줄이 바닥에 있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쟤는 얼마나 겁이 많은지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아."
할머니가 우리를 의식한 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아이의 불안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그만 집에 갈까?"
내가 물었다. 아이가 어쩔까 고민하는 사이, 할머니는 다른 쪽 미끄럼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뚱이야, 할머니 봐라."
주인 할머니는 옆에 있는 파란 미끄럼틀을 타고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할머니의 미끄럼틀 타기 성공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뚱이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흔들기구에 중독된 것 같은 친구 할머니는 계속 몸을 앞뒤로 흔들며 그 모습을 지켜봐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학교 앞 놀이터는 할머니와 뚱이, 우리 가족의 차지가 되었다. 아이가 탄 그네는 한계가 없는 것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고, 할머니의 용기는 아껴두었던 마음처럼 반갑게 미끄럼틀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뚱이의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촉촉한 눈망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 할머니를 향해 있었다. 할머니의 친구는 그 모습을 배경 삼아 흔들기구에서 즐겁게 춤을 췄다.
그날 우리는 그 누구도 서로에게 정확히 말을 건네지 않았다. 대화라고 할 법한 말도 없었다. 그저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그렇게 지켜봤다. 나는 타인의 삶이 즐거워지기를 기다렸다. 할머니가 미끄럼틀을 포기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뚱이가 할머니를 계속 그렇게 봐주기를 바랐다. 친구 할머니가 뚱이 대신 대답해주며 그들과 함께 해주었으면 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알아왔던 사이처럼 말이다. 정말이지 그 마음은 퍽 이상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