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고 싶다

by 젼정


가을을 붙잡고 있는 여름의 미련이 거실 한가운데 먼지처럼 굴러 다닌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선풍기 바람이 왼쪽 뺨과 아래턱에 닿는 순간을 느끼고 있다. 여름이라고 해도 믿을 날씨다. 오전부터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놓았다.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놓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글이 술술 써질 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글이 써지긴 한다. 그렇지만 그 글이 내가 원하는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생각이 먼저 도착해 있어야 한다. 글이 먼저 도착해 있으면 생각이 글에 의해 조작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럴듯한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가벼운 글로 워밍업을 해두어야 나는 글이 잘 써진다. 글을 쓰기 위한 예열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입이다. 실제로 쓰기 시작하면 오래 걸리진 않는다. 상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일단 쓰고 고치면 되니까 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쓴다. 그런 경우가 가장 좋다.


솔직히 나는 좀 대단한 걸 쓰고 싶다. 그런 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으면 인생의 역경을 견뎌내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늘 비장해진다. 비장해진 만큼 잘 쓰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기 때문에 자꾸 죄책감이 생긴다. 잘 쓰지도 못하면서 늘 투덜거리기나 하고, 요행을 바라기나 하고.


마음에 도착한 말을 쓰고 싶다.

잘 쓰고 싶다.

나는 잘 쓰고 싶다.

어제의 나보다 잘 쓰고 싶다.


제대로 쓰지 못한 날에는 푹 파인 마음의 웅덩이에 더러운 물이 가득 찬 것만 같다. 그 길을 계속 맨발로 오고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집에서 밥이나 축내는 백수가 되고 싶진 않은데 글을 써서 내가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돈을 받을 정도로 잘 쓸 수 있을까. 늘 비슷한 질문이 내 마음을 떠돈다.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 대답을 듣는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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