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에서

짧은 소설

by 젼정


나는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이르기 위해서 카카오맵을 켠 휴대폰을 오른손에 들고 걸었다. 왼손으로는 열 살 딸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왼쪽 어깨에 맨 가방이 자꾸 흘러내려 팔꿈치 안쪽에 걸린다. 가방을 고쳐 맨다. 카카오맵에 표시된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나는 그것을 몇 차례 반복했다.

낯선 골목이었다. 오래된 간판과 건물들을 곁눈질하며 우리는 골목 깊이 파고들었다. 왼쪽으로 문이 굳게 잠긴 가게가 보였다. 나무에 분홍색 페인트를 칠했을 중년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남자를 이상하게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밀리터리 바지에 남색 잠바를 입고 분홍색 페인트통에 붓을 넣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나는 그 자리에 재빨리 그려 넣었다. 남자는 다시 붓을 들고 페인트칠을 시작한다. 담배가 빠르게 타들어간다. 담배는 차가운 바닥에서 빛을 잃는다. 분홍색 가게 주인과 방문객들이 던진 버린 담배꽁초가 그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건 아닐까.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와르르 담배꽁초기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가게는 토하기 진전의 상태다. 문을 열면 모든 것을 토해낼 기세다. 문틈에서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살짝만 건드리면 정체를 드러낼 정도의 틈을 외부인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가 그 문을 보았을까. 아이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갈까 싶어 왼손에 더 힘을 준다.


드디어 사람이 보인다. 비를 맞은 후 한 번도 볕을 쬐지 못한 나무처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몸짓이었다. 남자의 다리는 나무처럼 땅에 처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가만히 서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남자의 피부색은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지나간 공사장 바닥에 깔린 야자수 매트처럼 얼룩덜룩했다. 나는 남자와 가까워지기 전에 아이의 손을 더 꽉 붙들었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자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표정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우리가 지나갈 때 남자의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이제 남자에게는 표정뿐 아니라 얼굴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남자의 얼굴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좌우로 펼쳐진 길이 조잡스러운 불빛으로 반짝거린다. 그 어떤 조화도 찾아볼 수 없는 골목이다. 자기 가게만 잘 보이면 그만이라는 식의 불빛들이다.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불빛이 그 골목의 얼굴이다. 이제 한 여자가 보인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감당할 수 없는 걸음걸이다. 뚱뚱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해서 그렇다. 어두운 보라색 상의는 몸에 겨우 들러붙어 있다. 왼쪽 손목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네모난 가방이, 머리에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남의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어색해 보인다. 착 감기고, 딱 어울리는 것이 없는 여자다. 남의 옷을 입고, 자신의 삶을 방치하는 사람의 몸짓은 둔탁하고 비릿하다. 덜 익은 음식을 식탁 위에 냄비째 올려놓고 썩은 이를 보이며 웃을 것 같은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져 발걸음을 늦춘다. 여자를 관찰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곁눈질을 한다. 여자가 습관처럼 살짝 벌리고 있는 입처럼 근처 가게들은 문을 애매하게 열어놓고 있다. 여자는 곧 얼굴 없는 남자와 마주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남자는 얼굴이 없어 여자를 볼 수 없고, 여자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들을 붙잡고 있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골목을 빠져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왼쪽 끄트머리에 서 있는 소년의 뺨에 선명하게 그어진 빨간 흉터를 발견했다. 어떤 흉터인지 자세히 보고 싶어 곁눈질을 몇 번 했다. 아이가 내 팔을 흔든다. 보행자 신호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길을 건너며 소년의 키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놀란다. 인도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소년의 키는 꽤 커 보였다. 소년은 내게 오른쪽 뺨을 보인다. 우연히 마주쳐도 궁금해하지 않을 자신의 오른뺨이 얼굴의 전부라는 듯이. 나는 오른손에 든 휴대폰의 화면을 검게 만들고, 주머니에 넣는다. 아이와 잡은 손이 느슨해진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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