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인천 뒷골목 나라

by 젼정

얼마 전 처음 본 사람에게 점심을 얻어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점심을 사준 사람은 '나는 질적으로 다른 장사를 해'라고 외치던 이불가게 사장님이었다. 이번 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동생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대여하기 위해 엄마와 한복가게에 갔다가 그곳에 가게 되었다.


이것은 혹시 운명?


동인천 북광장에는 전통혼수거리가 있다. 한복가게와 이불가게가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 좁다란 거리다.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이곳도 한때는 전성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가게가 많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는 곳이라는 길 끄트머리에 있는 한복가게에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이 먹은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을 깨우기 미안해서 어쩌지 하는데 엄마가 자연스럽게 인기척을 했다.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나 엄마를 알아봤다.


"들어오세요."


한복가게에는 다양한 색감의 한복들이 쭉 걸려 있었다. 엄마는 한복 카탈로그를 보면서 한복을 골랐고, 그 사이 주인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꺼내 우리 앞에 내주었다. 엄마는 이제 한복 입을 일이 없을 것이라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한복도 예전과 다른 트렌드라면서 요즘 스타일의 한복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때쯤 거기서 일하시는 분인지 이웃인지 등이 굽은 할머니가 가게에 들어와 제 집처럼 편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기에 앉아 자연스럽게 우리가 한복 고르는 일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이게 낫다, 저게 낫다. 자신은 자식이 없다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었다. 내가 자기 조카랑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한복을 입을 일이 없으니 어떤 한복이 요즘 트렌트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전문가가 말해주면 그렇구나 할 뿐이다. 요즘 트렌드는 파스텔톤인가 보다. 엄마는 고심 끝에 꽃무늬가 있는 잿빛 치마에 점잖은 초록색 저고리를 골랐다. 주인 할머니가 치수를 재는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내 차례였다.


"저게 딱이야."


주인 할머니는 밝은 회색 치마와 분홍색 저고리 한복을 내게 권해주셨는데 저고리가 궁중에서나 입을 법한 디자인이라 낯설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내색을 하자 주인 할머니는 살구색 치마와 비즈가 달린 하얀 저 고기를 꺼내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왕 왔으니 이것저것 입어보고 싶은데 주인 할머니는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정해져 있다면서 다른 옅은 초록빛 저고리를 골라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지나고 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이 선택할 때는 너무 중대한 사안이 된다. 선택의 폭이 넓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편리함도 있다. 내가 입을 한복을 결정할 시점이 되자 등이 굽은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신나게 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불 사기' 숙제를 꺼내 거기에 펼쳐 놓았다.


"내가 자전거 타고 가서 알려줄게. 이불은 거기가 좋아."


한복집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와 우리는 등이 굽은 할머니를 따라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그 할머니는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 심산이었다. 두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앞으로 끌며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강도 맞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저쪽에서 여인숙을 오래 했어. 내가 그거 하면서 강도를 두 번이나 맞았잖아."


"강도요?"


엄마와 내가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등이 굽은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강도를 두 번이나 맞았어. 강도한테 두들겨 맞아서 내가 뼈가 부러져서 등이 이렇게 된 거야. 나를 가둬 놓고 때렸어. 신고하면 가만 안 둔다고 해서 신고도 안 했어. 지금 저쪽 재개발된다고 해서 집을 알아봐야 돼. 난 장사를 오래 했어."


처음 본 사람끼리 할 수 있는 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등이 굽은 할머니를 안쓰럽게 여기며 그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타인의 세상은 너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도를 맞고도 계속 장사를 이어나가야 했던 그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모질었을까. 나라면 그런 말을 처음 본 사람에게 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 상처는 다 아물어서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걸까. 가끔 나이 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여정을 하루 일과처럼 말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가 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그들은 무용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스스로 지켜낸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저기야!"


등이 굽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우리는 이불가게 앞에 도착했다.





이불가게 사장은 우리를 보자마자 입이 귀에 걸리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만에 온 손님인지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는 한복가게에서부터 우리를 데리고 왔다고 했고, 이불가게 사장님은 잘 왔다면서 우리를 반겼다. 가게 중간에 앉아 있던 이불가게 아저씨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를 비웠고, 이불가게 할머니만이 자신의 장사 스킬을 보여줄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불가게 사장님의 나이는 칠십이 넘었지만 열정만은 혈기 왕성한 청년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잘 왔어요! 내가 잘해줄게!"


활기차고 다부진 목소리에서 지금까지 이불가게를 지켜온 힘이 느껴졌다. 등이 굽은 할머니는 자신은 이제 가겠다며 자전거를 다시 챙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내가 가는데……."


혼잣말에 가까운 그 말은 자전거가 우리와 멀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불가게에는 다양한 이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불가게 사장님은 어떤 용도로 이불을 사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들이 결혼해서 친척들에게 선물로 돌릴 것이라고 마침내 이불 사기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말했다.


"아! 그렇구나!"


이불가게 사장님의 목소리는 흥분에 휩싸여 말끝이 살짝 갈라졌다. 몇 개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을 때 이불 가게 사장님은 더 기뻐진 것 같았다. 엄마의 손가락이 열 개를 넘어섰기 때문이었을까. 이불가게 중간에 있는 한평 남짓한 바닥에 이불 가게 사장님은 우리가 보여달라는 이불을 열심히 펼쳐 보였다. 그 사이 엄마가 어디 지역 출신인지 물었고, 그다지 공통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을 귀신같이 파고들어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불가게에서까지 지연이 필요한 건가. 어쨌거나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엄마가 동생 결혼식을 이유로 친척들에게 이불을 돌린다는 게 탐탁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엄마에게 있었다. 엄마는 예전에 그런 식으로 받은 이불에 대해 상세하게 평가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건 누가 결혼할 때 준 이불인데 괜찮고, 이건 저렴해서 그런지 얼마 못 가 버려야 했다고 하면서 이불을 준 사람과 대조해서 기억했다. 이불이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기억된다면 차라리 선물을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변찮은 이불을 선물해서 이런저런 말을 들을 바에야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한복 가게로 걸어가면서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엄마는 내 말에 공감하는 것처럼 이불 선물을 안 한다고 마음을 굳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복 가게에서 나올 때 엄마는 이불을 꼭 해야 되는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고, 이불가게 안에서는 정해진 절차처럼 귀한 고객으로 둔갑해 있었다.


"저걸로? 14개?"


이불가게 사장님은 오래간만에 일다운 일을 해서 그런지 무척 신나 보였다. 우리가 어느 정도 선택의 가닥을 잡자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요구르트 두 개 내왔다. 나는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이제 이불을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격대와 디자인을 고려해서 결정을 하고 나자 이불가게 사장님은 능숙하게 주문 내용을 수첩에 적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꼭 해야 하는 사람처럼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냉면 좋아해? 내가 점심 사줄게!"


"냉면?"


엄마가 그 말을 하는 사이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괜찮다고 그 호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불가게 사장님은 내 거절을 기분 좋게 없애버렸다. 내 거절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손님에게 점심을 사줄 정도로 바가지를 씌운 건가?'


나는 잠시 이불가게 사장님을 의심하다가 그냥 그 골목은 다 그런 식인가 싶어서 웃음이 났다. 엄마랑 나온 김에 함께 가려고 했던 식당이 있었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엄마는 이불가게 사장님이 점심을 사준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였다. 이불가게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가게 바로 옆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손님 데리고 왔어?"


식당 서빙을 하는 남자 사장님이 물었다. 식당 사장님은 '아저씨'라는 말보다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나이로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호객꾼에게 붙잡혀 식당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냉면이 맛있다고 했지만 아침에 밥을 먹지 않은 나는 밥을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이불가게 사장님은 물냉면과 차돌된장찌개를 시켜주고 쿨하게 퇴장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반찬이 서너 가지 나왔다. 그곳으로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그 식당 안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메뉴판을 보니 다른 식당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보였다. 음식이 나왔다. 나는 묘한 기분으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부지런히 먹을 것을 옮겼다. 어쩐지 이 반찬이 재활용된다 해도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이해해줄 것 같았다. 자신들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한다 해도 아무도 고치라고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차돌된장찌개에 함께 나온 새싹비빔밥 그릇에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밥을 먹는데 한 남자가 식당 문 앞에 서서 익숙한 듯이 주문을 했다. 남자는 몸을 가게 중간에 걸쳐놓지도 않고 있었다.


“새싹 비빔밥 하나요. 새싹 빼고.”


주문을 받은 할아버지 사장님은 주방에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새싹 비빔밥, 새싹 빼고. 그다지 황당해하거나 이상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새싹 비빔밥을 저런 식으로 시키는데 아무도 아무렇지 않아 하고, 그걸 들은 손님들이 웃지도 않는다니 놀라웠다. 타인의 세계에 허락 없이 침입한 불청객, 나는 그 공간에서 그런 존재였다.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웃음을 참으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너무 웃기지 않아? 새싹 비빔밥인데 새싹 빼고 달래."


"그러게"


엄마는 냉면 그릇에 남은 면을 건져 올리며 대답했다. 나만 이렇게 웃긴 건가.


식당에서 나와 우리는 이불가게에 들러 밥을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식당에서 나올 때 '계산하셔야죠.'라고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끝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그것도 장사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밥을 사주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이불가게 사장님은 흐뭇한 얼굴로 맛있게 먹었느냐고 하면서 이리 와보라고 손짓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이불가게 사장님은 외국 과자 두 개를 내밀었다.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면서, 두 뺨이 봉긋 솟아오르게 기뻐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갑자기 아까 고른 이불 말고 다른 걸 보고 싶다고 했다. 잠깐 사이 아이보리 배경색에 핀 빨간 꽃 이불이 다시 바닥에 쫙 펼쳐졌다. 그러면서 이불가게 사장님은 자기는 이 이불을 팔면 더 손해지만 이것을 사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자신이 이불을 좀 볼 줄 안다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했다. 다 정해놓은 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도 이불가게 사장님은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질적으로 다른 장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가. 어쨌거나 나만 빼고 다 만족한 것 같았다.


'아무렴 어때. 엄마가 좋으면 됐지.'


그게 어려웠다. 엄마가 나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엄마가 내게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불 정도는 엄마 마음대로 선택해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날 외출이 나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자기가 강도 만난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고? 처음 만나 사람한테 점심을 사줄 수 있다고?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이상한 동인천 뒷골목 나라에서 보낸 대낮은 꽤 흥미로웠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골목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와 달랐고, 나는 그것을 영영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길이 남아 있다면 그동안만큼은 우리는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 다리가 아파 무릎을 굽히기 힘들었던 한복 가게 사장님의 노련한 눈썰미와 등이 굽은 채로 자전거를 타고 그 골목을 지나는 할머니, 마음을 다해 이불을 팔고 있는 이불집 할머니, 새싹 비빔밥을 새싹 없이 파는 식당 할아버지, 이상한 동인천 뒷골목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부디 그들이 그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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