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왜 쓰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쓴다.
내 이상한 마음을 나라도 헤아려주고 싶어서 쓴다. 내 기분이 다른 감정으로 쉽게 덮어쓰기 돼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쓴다. 내 결핍을 이해하기 위해 쓴다. 이렇게 말하기가 사실은 좀 두렵다. 나 자신을 위해서 쓴다면서 나는 그것이 밥벌이가 되길 원한다. 너무 이기적인 마음이라 숨기고 싶다. 당장은 쓰기만 하고 돌아오는 건 없으니 미안하진 않다. 내가 좀 더 순수한 의도로 글쓰기를 한다면 멋져 보일 텐데,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취미로 쓰면 이기적일 것도 없는데 나는 줄곧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이유가 그거 하나는 아니다. 나와 마음이 닮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하나의 대답을 요구한다면 나를 위해서가 먼저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위로라는 말을 쉽게 하고 싶지 않다. 이미 그랬으면서도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친 마음이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글로 그렇게 쉽게 위로될 리가 있나. 글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글을 자꾸 의심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지 않다.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잘 될 거라고 안심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위로하는 건 내 방식이 될 수 없다. 나는 내 글을 자꾸 고립시킨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과 상황에 끌려 다니기 일쑤다. 나의 삶이 오직 나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희생된 타인의 삶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그것을 외면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도전할 수 있을 '때'에는 꼭 그것을 해야만 한다. 도망가서는 안 된다. 나이가 먹으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장된다. 그럼 선택이 쉬워질까. 오히려 어렵다.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왔던 부모, 가족을 위해 매일 일터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나의 선택은 이기적이기만 하다. 내가 뭐라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글쓰기에 인생을 던진 것도 아니면서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여기는 나의 삶의 형태도 때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다른 작가들이 타인의 삶을 깊이 이해하는 글을 쓰고, 그들의 삶을 위로하는 글을 쓴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작아진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서도 아니다. 내가 작아지는 이유는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는 마음은 나를 작은 방에 가뒀다. 자유롭게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솔직해지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하루에 한 번도, 한 달에 한 번도, 일 년에 한 번도, 아니 평생에 한 번도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불안을 가지고 휘청이면서도 나는 조심스럽게 시작점에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나를 위해 쓴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까. 나와 닮은 타인의 마음이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앉아 무릎을 안고 있진 않을까. 나를 마주하며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맞닿기를 고대하고 있다. 쓰지 않으면 밑 빠진 독처럼 계속 사라지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 채우고 있다. 나를 위해서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부끄럽게도 내 마음이 그렇다. 글을 쓰는 이유가 고작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