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음은 대체 뭘까. 갑자기 울고 싶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어릴 때는 누가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이 눈 안에 그렁그렁 차올라서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눈물은 잘 찾아오지 않는 손님처럼 군다. 잘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와달라고 구걸할 수도 없고, 홍보를 할 수도 없으니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울거나 나를 열받게 하는 상황에 억울해 우는 것 말고, 마음이 먹먹해져서 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제대로 울어본 지 오래된 기분이다. 얼굴 전체가 퉁퉁 부을 정도로 울어서 다음날 얼음찜질을 하지 않으면 부은 눈이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아침이 있었다. 그런 날 거울 앞에서 마주한 내 얼굴은 정말 봐주기 힘들었다. 여러 겹인 쌍꺼풀은 방금 성형수술을 하고 나온 것처럼 어색하게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때마다 눈꺼풀은 밥그릇에 오랜 시간 눌어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밥풀처럼 힘겨워했다. 눈물은 휴지에 겹겹이 쌓였다.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계속 나오는 건지.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왜 울고 싶은가. 어떤 무드로 울고 싶은가.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우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울면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콧물이 나기도 한다. 울음 끝에 마음의 후련해질 때도 있지만 울면서 더 서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창피한 마음이 들어 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한번 울면 그동안 울지 못했던 것을 다 쏟아내려는 사람처럼 작정하고 운다. 참고, 참아낸 눈물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정도로 많이 울 때도 있다.
정말 울고 싶다고?
아니, 그냥 우는 건 달갑지 않다. 내가 원하는 울기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건 바로 ‘로맨스적 울기'다. 우는 것에도 이유는 다 제각각이다. 일상의 기쁨과 환희, 슬픔과 절망을 표현하는 울기 말고 로맨스적 울기를 나는 원한다. 나는 로맨스적 울기와 너무 멀어졌다. 연애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던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한참 지난 후에 찾아온 눈물, 짝사랑의 애달픈 감정을 되새기며 잠들기 전 흘렸던 눈물, 남자 친구와 싸우고 불안한 감정에 찾아온 눈물, 그 눈물들은 한 시대를 대변하는 전성기 밴드처럼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그때의 눈물을 찾아가 그 시절의 영광에 대해 인터뷰를 한다면 눈물은 뭐라고 답할까. 청춘을 담아 최선을 다해 울었다고, 가슴이 저릿한 채로 펑펑 울어 퉁퉁 부은 눈을 과감하게 만들어 냈다고, 다음날 얼굴이 엉망이든 말든 상관없이 그 순간을 위해 울었다고, 눈물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결혼과 함께 서서히 찾아온 관계의 안정감으로 '로맨스적 울기'는 차츰 내게서 멀어졌다. 결혼 후 찾아온 눈물은 이전과 분명 달랐다. 귀여운 얼굴로 서운해하며 조심스럽게 울던 모습은 막을 내렸다. 한 마디만 더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얼굴로 열받아하면서 우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존재가 희미해서 울고 싶기도 했다. 그런 순간에는 진짜 울었다기보다 울 정도의 마음에 늘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왜 드라마에 그렇게 몰입할까. 남의 연애 관찰 프로그램에 왜 관심을 가질까.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드라마나 연애 관찰 프로그램은 로맨스를 경험했던 나의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런 때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보다 그런 때를 지나친 사람에게 더 아련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보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더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전부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의 울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사랑스럽다. 그 시절에는 울고 있는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져서 싫었다. 상대가 주지 않는 감정을 눈물로 구걸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초라해 보였다. 지금은 그럴 수 있었던 마음조차 괜찮게 느껴진다.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며 울었던 때가 있었다. 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울었던 때가 있었다. 아무도 달래주길 원하지 않고 그저 울었던 때가 있었다. 그 눈물이 나는 그립다.
눈물의 전성기, 그것은 청춘이고 사랑이었다. 지금 내가 그렇게 울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 눈물 덕분이다.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이유도 없는 눈물의 정체를 밝히며 나는 그 눈물에게 인사를 건넨다. 평일 오후 하품과 함께 카메오처럼 등장한 흐르지 않는 눈물과 함께.
거참, 신나게 잘 울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