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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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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Nov 22. 2022

그다음에 대해서

짧은 소설


문자가 왔다. 기다렸던 문자였다. ‘어디야?’라고 묻는 문자가 그의 음성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라고 다희는 말했다.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곳이 자신이 사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이라고 다희는 한번 더 말했다.


다희는 난생처음 혼자 해외여행 중이었다. 그 문자를 받았을 때 다희는 일본 교토의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오사카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중간에 갈아타고, 버스까지 타야 교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교통정보를 숙지한 덕분에 다희는 처음치고는 꽤 능숙하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였기에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볐다. 청수사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며 다희는 자신의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희는 오른쪽 팔을 길게 내밀어 셀카를 찍었다. 팔이 짧아서일까. 역시 좀 애매한 구도였다. 배경도 사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희는 자신과 배경이 완벽하게 결합된, 누구 봐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정형화된 구도의 사진을 원했다. 누구에게 부탁을 해볼까. 다희는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지 못해 애매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두 계단 올라갔다가 한 계단을 내려오길 반복한 끝에 용기가 불쑥 생겨났다. 다희는 서양인 여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혼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부탁하지 않아도 될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평소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하지 않았을 행동이기도 했다.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이 대체 뭐라고. 금발의 서양인 여자는 성의 없는 태도로 다희의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얼마나 그 부탁을 귀찮아하는지. 다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색해져 굳어진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카메라와 마주할 때마다 다희는 무표정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웃으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원래 그렇다 해도 그곳에서는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다희는 내심 그런 기대를 했다. 그곳은 낯선 여행지니까.


망했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다희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색했다. 눈은 반만 뜨고, 입술은 꽉 다 물고, 숨은 참고 있는 상태로 카메라 버튼이 눌리길 기다렸다. 그 모습은 마치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놀이공원 포토존 앞에서 억지로 사진을 찍는 어린애 같았다.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경우 계속 들어야 할 잔소리를 생각하며 그 순간을 참는 어린애의 마음은 늘 거기가 아닌 저기에 가있기 마련이었다. 저기엔 솜사탕과 팝콘, 젤리가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그중 하나쯤은 아빠가 사줄 것이라 기대하며 어린애는 힘을 내 입꼬리를 올린다. 교토의 계단에 서 있는 다희와 서양인 여자는 어떠한가. 부탁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인다. 부탁을 들어준 사람의 손가락은 미묘하게 무뚝뚝해 보인다. 하나, 둘, 셋 또는 원, 투, 쓰리라는 구호도 없이 네모난 화면에 남겨진 교토 계단 위의 다희의 표정이 그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라면 마음의 빗장이 잠시 풀릴 만도 한데 다희와 서양인 여자는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는 관계처럼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했다. 그렇다 해도 사진은 다희가 꼭 원하는 대로 나왔다. 누가 봐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구도의 사진이었다.


다희는 여행책과 인터넷으로 수없이 찾아보았던 풍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여행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기분도 퍽 괜찮았다. 다희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도착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패키지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이곳저곳 우르르 떠밀려 다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빨간 깃발을 들고 있었다. 빨간 깃발이 사람들 머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중에는 빨리 가자는 사람도, 더 있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한데 뭉쳐져 보였다. 모두 각자 서있었음에도 하나처럼 보였다. 다희는 자신이 그 무리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정교한 짜임새가 느껴지는 청수사와 그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며 다희는 자신이 시간의 어딘가로 뚝 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질적인 시간이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가끔 찾아오는 건 아닐까. 그것이 시간의 비밀이 아닐까. 빠르고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이 실제로도 그런 게 아닐까. 총량을 유지하며 시간이 개인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고,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해서 우리가 몰랐을 뿐이라고, 다희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다희가 교토에 있는 시간 동안 원래 있었던 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다희의 기분과는 달리 시간은 평소와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다희는 그저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에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늘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 익숙한 곳일 테지만 다희에게는 새로운 세계인 그곳은 낯설고, 평화로웠다. 적어도 그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어디야?


그렇게 묻는 것을 봐서는 발신인이 다희와 친밀한 관계는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희가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혼자 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야?’라고 묻는 것은 다희가 현재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는 뜻이다. 그럼 그다음 대화는 어떻게 이어질까. 다희는 답장을 하기도 전에 그다음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야?’라는 질문보다 그다음이 더 중요했다. 자신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다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기에 다희에게는 그다음이 중요했다.

다희가 그렇게까지 답장 쓰기를 고민했던 이유는 그와의 관계에서 다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다희는 자신이 여전히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그 순간 확인했다. 그만큼 좋아했고, 매달렸으면 쪽팔려서라도 끝냈어야 할 관계였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다희는 그 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야?’라는 문자의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다희는 그의 늪에 발을 빠뜨린 것처럼 곤란스러워졌다. 다희는 그에게 보낼 답장의 문장을 생각하며 여행지를 걸었다. 순식간에 그곳은 다희에게 배경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 있는 내내 그곳은 다희에게 모든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곳은 다희의 전부였다. 동네를 거닐 때 그곳이 다희에게 전부가 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갈 수 있는 장소는 늘 중요한 대화에 흐르는 흐리멍덩한 배경음악처럼 존재한다. 손을 내밀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관계, 문밖으로 나가 조금만 걸으면 볼 수 있는 풍경들은 늘 그런 식으로 곁에 있었다. 다희가 서있는 3월의 교토는 달랐다. 다희의 눈앞에 펼쳐진 교토는 일상을 넘어서는 장소였다. 문자에 찍힌 ‘어디야?’를 확인 한 이후부터 전부였던 그 장소가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다희는 문자가 오기 전 본 장면들만 선명하게 기억했다. 문자를 확인한 후에 본 것들은 문자에 의해 엄폐되었다.  


왜, 왜라고 보내고 싶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왜 궁금한 것이냐고 보내고 싶었다. 술에 취해 전화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으면서, 길 건너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도 모른 척 지나쳤으면서,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내버렸으면서, 왜, 왜, 다희는 빈 화면에 ‘왜’라고 몇 번을 썼다가 지웠다. 화면은 다시 텅 비었고, 다희는 화면 속을 거닐듯 낯선 거리를 걸었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처럼, 그곳을 잘 아는 사람처럼 다희는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주택가 차고에 서 있는 민트색 택시를 구경하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알록달록한 자판기 앞에 서서 무슨 음료수가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서도, 다희는 그 문자에 대한 문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빛이 어둠으로 교차하는 시간대에 갇힌 사람처럼 다희는 그 시간 안에 서 있었다. 멈춘 것 같은 시간에 밤이 내렸다. 눅눅해진 공기가 느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야 할 곳에서 멀어져 있었다. 되돌아 가면 아까 보았던 길이 나타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만큼 꽤 긴 거리를 다희는 걸어왔다.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관광지로부터 멀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길을 잃어버렸어. 나는 지금 교토야.


다희는 선 채로 답장을 보냈다. 무슨 색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깃발이 저 멀리서 일렁거린다. 배낭을 멘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희는 그곳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그다음에 대해서. 그에게 답장이 오기 전까지 다희는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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