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볕이 든 분꽃의 얼굴을 보며 인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골목 길가에 핀 진홍색 분꽃은 그날의 분꽃과 닮아 있었다. 인희는 분꽃을 자주 꺾었다. 그 행동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 분꽃에는 주인이 없었다. 아니, 주인이 있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모든 꽃과 풀들을 손으로 만졌다. 그것에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분꽃의 아랫부분을 살짝 비틀면 분꽃 안에 있었던 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손으로 힘을 조절하며 분꽃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만졌던 순간이 선명히 떠올랐다.
초등학생이었던 인희는 학교에 다녀오면 늘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은 아무리 보내도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인희는 골목에 나가 어제 가지고 놀았던 흙을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헤치며 친구를 기다렸다. 조금 전에 집으로 들어간 진희가 밖으로 나올 확률이 가장 높았다. 인희보다 먼저 집에 돌아온 동생은 이미 다른 동네에 가 있었다. 인희의 동생은 어릴 적부터 그랬다. 늘 새로운 곳을 찾아냈고, 망설이지 않고 그 세계로 몸을 던졌다. 인희가 인상을 쓰며 새로운 세상을 경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동생을 따라 그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면 인희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인희는 노란빛이 감도는 제물포 시장의 벽을 좋아했다. 그 노란빛은 유난스럽게 밝지도 이상하리만치 어둡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반짝이는 날이면 인희는 손가락을 펼쳐 노란빛이 스민 벽을 훑어가며 걷기도 했다. 인희의 손끝에 벽의 표면의 질감과 온도가 느껴졌다. 인희는 볕이 비추는 곳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슈퍼 앞에 놓인 과일이 반들거리는 것을, 쌀가게 앞에 놓인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가 따뜻하게 데워진 것을, 크고 작은 집들의 담장 안에 있는 나무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을, 인희는 제물포시장의 벽을 만지며 느낄 수 있었다. 제물포시장 안에는 구멍이 난 것처럼 골목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바깥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시장 가판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들을 스치며 묘한 냄새를 만들었다. 생선 비린내와 흙과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풀 냄새, 닭강정집의 기름 냄새와 미리 삶아놓은 족발 냄새, 한솥 끓여놓은 육개장 냄새, 생선조림 냄새, 그런 냄새가 한데 모여 사람들을 사이를 지나다녔다. 인희는 웬만해서 그 골목으로 다니지 않았다. 제물포시장 밖과 안의 온도차가 컸기 때문이었다. 제물포시장 밖에 내리 쬔 볕을 시장 안에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하루 종일 나물을 다듬는 아줌마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져 있었다. 목욕탕용 의자에 앉아 오른손에 칼을 들고 조개의 입을 벌리는 할머니의 손은 항상 젖어 있었다. 시장 안의 땅바닥은 늘 축축했다. 젖은 바닥을 운동화로 밟고 지나가면 마른땅에 발자국이 생겼다. 시장 안의 온갖 냄새가 농축된 발자국은 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형태를 잃었다.
인희는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인희는 제물포시장 바깥에 있는 볕을 좋아했다. 볕이 든 제물포 시장의 노란빛에 휩싸일 때 인희는 자신의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고 있음을 체감했다. 인희의 이마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에 닿은 오후의 볕은 자신이 얼마나 찬란한지 인희에게 보여주었다. 인희는 입안에 공기를 가득 품고 있다가 코 위쪽으로 자신의 몸에서 나온 공기를 내뱉었다. 그럼 머리카락이 볕 사이로 붕 떴다가 가라앉았다.
인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진희를 기다렸다. 제물포시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진희를 기다렸다. 진희가 사는 집은 인희가 쭈그려 앉아 노는 골목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희가 사는 집이 아니라 그 집의 주인집이 보였다. 진희네 집은 그 집을 지나 구석에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인희가 있는 곳에서 진희네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집 대문은 열려 있었다. 대단한 마당을 가지고 있는 부잣집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지만 집 한쪽에 세를 주고 사는 사람들은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쩌면 문을 닫고 갔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오고 가며 그 문을 그대로 두어서 늘 열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희와는 3학년이 돼서 같은 반이 되었다. 원래 진희는 다른 동네에 살았는데 여름이 코앞에 왔을 무렵, 인희네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인희는 진희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에 반가움이 앞섰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거주지는 자신이 처한 형편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은 크면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형편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형편이 좋지 않은 집에 살고 있는 어린이의 삶은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 태어나보니 아빠, 엄마가 누구라는 말이 인희에게는 얄밉게 느껴졌다. 모두가 그런 부모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인희는 자신의 아빠,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미워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빠가 밥을 먹다가 언성을 높이고, 다음 차례라는 듯이 손을 가슴 위로 올리며 상을 뒤집어 업겠다는 시늉을 하면 인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늘 마음을 졸였다. 밥그릇에 남은 밥은 아빠의 고함을 듣고 놀라 말라비틀어졌다. 마른밥 위에 인희는 가끔 눈물을 쏟았다. 아빠는 엄마가 대꾸를 하건 안하건 상관없이 밥상을 자기 마음대로 건드렸다. 그 순간이 오면 나와 동생은 자리를 피해야 했다. 인희의 아빠는 자신의 화가 우선이었다. 어린 자식도, 생활고에 힘든 엄마도 안쓰럽게 여기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데 인생을 바쳤다. 밥상이 엎어지지 않으면 그날은 그런대로 잠이 들 수 있었는데 반대로 기어이 밥상이 엎어진 날에는 집 앞에 앉아 어둠에 숨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인희는 아빠, 엄마를 미워하지 못했다. 아니, 미워해도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인희는 골목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분꽃을 따서 망설임 없이 포를 당겼다. 녹색의 비닐 모양의 잎은 순식간에 꽃받침과 분리되었다. 포는 이제 인희의 귓구멍에 걸쳐졌다. 인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분꽃 귀걸이가 잘 걸려 있는지 확인했다. 진희는 집에 있는 걸까. 초록색 대문을 넘어 주인집을 지나 ‘진희야’라고 부르면 누구든 나와 진희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진희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인희는 마음속으로 진희를 불러보는 연습을 했다.
‘진희야. 진희야. 어디야?’
그 말은 그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로 가장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희는 진홍색의 분꽃을 하나 더 땄다. 어쩐 일인지 인희의 손은 망설이고 있었다. 갑자기 마주한 분꽃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까와 달리 인희의 손은 둔해졌다. 주욱, 툭. 포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걸이가 되지 못한 분꽃은 바닥에 버려졌다. 인희는 그것과 등을 지고 몇 걸음을 걸어 진희네 집 앞에 섰다. 인희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다시 걸음을 옮겨 떨어진 분꽃을 주워 흙에 올려놓고 싶기도 했다. 반대편으로 걸어가 검은색 대문을 넘나들며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런 욕구와는 달리 인희는 계속해서 진희를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인희가 느낀 외로움은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누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줘도 소용없었다. 엄마가 다정하게 인희의 이름을 불러도, 아빠가 어쩐 일인지 통닭을 사들고 와도 그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인희는 친구가 필요했다. 왜일까. 그 나이에 친구란 그런 것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 것을 충족시키는 존재, 그것이 친구였다. 그 시절 인희와 동네 아이들은 쉽게 약속을 했고, 흔하게 그 약속을 어겼다. 언제까지나 우리가 친구일 것이라는 진심은 세월에 의해 지워졌고, 각자의 모습을 내세우며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희는 그 순간만큼은 진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도 인희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 주변을 맴도는 것이 인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진희랑 만나기로 했어?”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진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희 엄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검은색 가방을 고쳐 들며 한쪽 손으로 인희의 등을 쓰다듬었다.
“진희 집에 있을 텐데 불러보지 그랬어. 아줌마랑 같이 들어갈래?”
인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희네 집은 시식코너에서 물건을 사면 덤으로 주는 사은품 같았다. 집에 딸린 집, 큰집을 위해 존재하는 집, 살 수 없는 집, 진희는 그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인희는 자신이 사는 집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은품 같은 집 문은 커다란 집에서 쓰는 방문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잠가도 완전히 닫히지 않는 문처럼 느껴졌다. 주방을 지나자 두 개의 방이 나왔다. 왼쪽에 있는 방문이 열렸다. 진희가 문 앞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희가 널 기다리고 있길래.”
진희 엄마는 주방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자신이 들고 있었던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가방 안에서 직사각형의 담뱃각이 나왔다. 인희는 그것이 왜 진희 엄마 가방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다. 진희 엄마가 자신의 아빠처럼 담배를 피울 거라는 상상은 잘 되지 않았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어쩐지 이상했다. 엄마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은 인희가 떠올려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진희 아빠 담배를 사 오신 거구나. 인희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 편이 자신에게 더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들어와.”
우두커니 서 있는 인희의 옷소매를 잡아 끈 건 진희의 작은 손이었다. 작은 손에서 당찬 힘이 느껴졌다.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코끝에서 짐작되었다. 가스레인지를 켜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진희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린 이불을 머리 위로 올려 텐트처럼 만들었다. 진희와 인희는 그 안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숨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다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먼저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진희는 방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이거 볼래?”
“이거 과학실에서 본 건데.”
“맞아. 현미경이야. 이걸로 보면 모든 지 크게 보여.”
“이런 게 어디서 났어?”
인희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학교 수업시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미경이 집에 있을 수 있다니, 저런 걸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었다. 큰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상자에 사는 사람도 저런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희네 집에 저런 물건은 없었다. 인희가 가진 것은 교회 목사님 딸이 업었던 옷과 시장에서 산 볼품없는 운동화, 음료수 유리병에 담아 놓은 길 건너 아파트 놀이터 모래, 여섯 개의 공기알이 전부였다. 인희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인희는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무엇이 없는지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런 인희의 눈앞에 있는 현미경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 현미경은 인희와 진희를 구별시켰다.
“우리 삼촌이 선물로 사다 주셨어. 엄청 신기해. 너도 한번 여기 눈을 대봐.”
현미경에 눈을 댄 인희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현미경 렌즈 안을 채운 푸른빛 사이로 하얀 점이 반짝거렸다.
“아오리 사과인가. 저게 뭘까.”
인희는 그곳에 혼자 있는 사람처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뭇잎이야. 신기하지?”
현미경에서 눈을 떼자 인희에게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어떤 방법을 통해, 무엇을 거쳐 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자신이 놓인 상황에 의해 해석된다. 같은 상황에서 모두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는 이유가 그렇다. 인희가 진희네 집을 들어서며 느꼈던 안도감은 진희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의 거리감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다는 사실이 어린 인희에게 묘한 위로감을 안겨주었다. 진희의 방에 담배연기가 침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에서 늘 담배를 벅벅 피워대는 자신의 아버지와 인희의 어머니가 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사실은 인희를 다시 한번 안심시켰다. 현미경은 어떤가. 현미경이 놓인 진희의 책상은 인희의 안도감을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인희는 자신의 책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책상이 없었으므로 무엇을 올려둘 기회도 없었다. 인희에게는 현미경을 사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현미경을 사줄 수 있는지 인희는 예상할 수 조차 없었다. 인희는 현미경의 성능이 궁금하지 않았다. 현미경이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희는 궁금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인희의 눈앞이 별안간에 뿌애졌다. 인희는 다 낡은 소매 끝으로 고인 눈물을 닦았다. 인희가 현미경을 통해 확인한 건 자신의 처지였다.
“뭐 관찰하고 싶은 거 있어?”
“글쎄. 너 계속 이거 보고 있었어?”
인희는 애써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리며 물었다.
“응. 이거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가. 우린 학원도 안 가니까 오후가 길잖아.”
“오후가 길지.”
겨우 열 살이 된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방안에 침입한 담배연기가 방의 모서리에 붙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방에서는 달그락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진희 엄마가 싱크대에서 몸을 뗀 모양이었다. 진희는 이런저런 것들을 현미경 받침대에 놓고 관찰했다. 인희가 밖에서 진희를 기다리는 동안 이 안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인희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 이상함은 뭐랄까. 우리가 모두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고, 다른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진희의 방을 맴돌았다. 인희는 방의 모서리에 앉아 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희는 웅크리고 계속해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진희 엄마가 방문을 열고 둘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진희 엄마는 아까와 달리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인희는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열린 문틈 사이로 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 집에 간다.”
그제야 진희가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진희 엄마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인희에게 두어 번 형식적인 말을 했고, 인희는 ‘괜찮아요’를 반복하며 그 집을 빠져나왔다. 골목의 볕은 나무와 꽃, 흙과 모래, 살짝 열려 있는 대문과 나무 우편함에 숨기 시작했다. 인희는 제물포 시장의 노란 벽을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차가워지는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볕을 머금은 어딘가로 자신의 데려가고 싶었다. 그때 인희의 눈에 분꽃이 보였다. 한낮의 볕을 받고 잠든 분꽃을 인희는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