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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Mar 10. 2023

부럽다고 말할 용기


자주 만나던 지인이 취업을 했다. 잠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던 지인이 동지처럼 느껴졌는데 다시 나만 남았다. 지인은 일을 하다가 1년 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1년이 지나자 계획대로 직장을 구했다. 지인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 어느 정도 맞는 직장을 구한 것 같았다. 물론 일을 하고 싶어서 일을 구한 건 아니었다.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부럽다.


이런저런 말을 듣다가 그 말이 나와버렸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부러워도 부럽다고 말하지 않았던 나를. 그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그 말을 하면 내가 초라해진다고 내심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부러워하는 마음은 부끄럽고 모자란 마음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부러움의 대상,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한 나를 나무라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도 그 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부럽다는 말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다. ‘부럽다’라고 말한 적은 많았지만 정말 부러워서는 아니었다. 부러운 척을 많이 했다. 부럽다고 말함으로써 묘하게 불편해진 기분을 정리했다.

최근에 내뱉은 그 ’ 부럽다 ‘는 좀 달랐다. 그 ‘부럽다’에는 지인이 경제적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대견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 ‘부럽다’에는 ‘나도 그렇게 밀어붙여 봐야 할 텐데’라는 중얼거림이 있었다. 그 ’ 부럽다 ‘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마음을 밀고 나간 용기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있었다.


장기하가 발표한 노래 중 ‘부럽지가 않어’라는 곡이 있다. 그는 다짜고짜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라고 중얼거린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대체 이게 뭔 소린가 했다. 노래를 듣다 보면 타인의 자랑(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자랑이 되는 것이지 말한 사람은 그냥 한 말일 수도 있다)을 들으며 부러워하다가 전혀 부럽지 않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부럽지만 그런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다. 너무 부러워서 부럽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부러워하지 않지만 부럽다고 할 수도 있다. 부러운 마음은 이토록 어렵다. 무작정 부러워하기엔 괜히 자존심이 상하고 부러워하지 않기엔 부러운 마음이 들어 낯 뜨거운 기분이 든다.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라는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 가사 일부


한동안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 다시 들었다.) 저렇게 노골적인 가사를 쓰고 부를 수 있는 용기가 나는 부러웠다. (부러운 것도 참 많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에 저런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의심이 많은 나는 ‘솔직히’가 붙은 말들을 자주 의심한다. 솔직한 말을 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숨긴다. 숨길 때도 있고 숨겨야만 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솔직함이 느껴지는 노래나 책이 나오면 당황스럽다. 내가 못한 것을 결국 해내고야 마는 것이 아티스트인가 싶어서 또 부러워진다.

특별할 것도 없는 ‘부럽다’라는 말을 들은 지인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약간 상기된 목소리에서 들뜬 기분이 느껴졌다.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부러움이 대상이 되진 못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 나는 내가 좀 괜찮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솔직히‘에 부합하는 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져서 퍽 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불순물 없는 ‘부럽다 ‘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지금껏 내가 가질 수 없었던 어떤 마음 하나가 생겨나 원래 있었던 마음에 보태어진 것 같다. 부러우면 그냥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천성이 밝아 보기만 해도 맑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는 부럽다.


부러워하는 건 초라해지는 일이 아니다. 부러워하는 건 지는 일이 아니다. 부러운 마음에 불순물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러이러 하지만 부럽다’에서 그냥 ‘부럽다’로 단순해진다. 어떤 날에는 그냥 편하게 부러워해보면 어떨까. 예뻐서 부럽다, 귀여워서 부럽다. 글을 쓰고 싶은 대로 써서 부럽다. 잘 쓰지 않아도 계속 써서 부럽다. 부러워서 나는 또 쓰기 시작했다. 부러워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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