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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Aug 12. 2023

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 잠들기 전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세울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잠을 청했다. 나는 욕망을 재우는데 능했다. 비슷한 욕망이 계속 내 마음을 두드려도 한결같이 나는 그 욕망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았다. 이상한 꿈을 꿨다. 그 꿈들은 아무런 연관도 없이 이어졌고 늘 그랬던 것처럼 금방 잊혔다. 잠에서 깰 때 즈음 다시 잠들기 전 가졌던 욕망이 떠올랐다. 어쩐 일인가 싶었다. 잠들면 그것으로 끝이었던 욕망이 사라지지 않고 거기에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대체 왜 글이 쓰고 싶은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지는 오래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욕망에는 특별한 힘이 없었다. 마음이 텅 빌 때마다 글이 쓰고 싶어 졌지만, 해소할 수 없는 불안과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글이 쓰고 싶어 졌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글이 쓰고 싶어 졌지만, 언제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글을 써서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까지 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럴 자신감이나 용기도 없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글을 쓴 것이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쓰는 글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순간에 너무 슬펐었다고, 어떤 순간에 너무 행복했었다고, 어떤 순간에는 너무 아쉬웠고, 어떤 순간에는 너무 울고 싶었고, 어떤 순간에는 좋았던 사람이 알 수 없이 미웠고, 사랑할 수 없었다고, 그러다 어떤 순간에는 그런 감정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고, 그래서 쓴 것뿐이라고. 나는 욕망의 끝에 있는 대답에 선 순간 초라해지는 내가 싫었다.


굳이 내가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까지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속에 부는 바람을, 마음속에 얼렁거리는 파도를, 타인에게 전달해서 무엇을 어쩌겠다고. 나의 그런 마음을 누가 알고 싶기나 할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해서 누군가에게 피로감을 주는 건 아닐까. 별거 아닌 나라는 존재가 더 쓸모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나는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마음을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싶은 동시에 내가 가진 마음 전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쓰고 나서는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 도드라지는 것만 같았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싫었다. 어떤 마음과 어떤 마음이 끝과 끝에 서서 서로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 끝에서 웃다가 저 끝에서는 울고 싶어졌다. 쓰고 싶은 마음조차도 나는 왜 자연스럽게 가지지 못하는 걸까.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쓰면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도 되지 않은 채로 나는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무엇을 위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나는 의미 없는 일들에 늘 의미를 찾았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안심했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어떤 의미를 붙여야 할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어제의 욕망은 내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 욕망은 잠에서 깬 아침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그 얼굴은 꽤 뻔뻔했다. 나는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질문 없는 욕망에. 저 끝과 끝에 선 나는 애매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름을 쓰고 싶다고, 나는 그렇게 나의 어떤 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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