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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정 Jun 16. 2024

여름을 좋아해

목적 없는 고백


여름밤, 어쩐지 그냥 잠들기엔 아쉬운 밤. 헤르쯔 아날로그의 ‘여름밤’을 들으며 여름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를 생각한다. 여름밤, 어느새 식은 맥주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진지한 이야기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다. 샤워를 하고 나와 젖은 머리카락인 채로 선풍기 앞에서 마시는 보리차, 티즐 복숭아맛이 시작이었을까. 고소하거나 달콤한 그런 맛으로 달래는 여름의 열기, 거기에 더해진 차가움이 좋았던 걸까. 어린 시절 무작정 달려 쫓던 소독차, 결코 함께 할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달려야만 했던 그 시절 여름날의 단순한 명랑함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여름의 아오리사과, 작은 앵두, 말랑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딱딱한 복숭아, 그런 것들. 분명하고 화사한 색만큼이나 확실히 시고 단 여름 과일들이 좋았던 걸까.


어린 시절 친구와 놀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여름날 바라보았던 석양 그리고 스치는 쓸쓸함. 제법 차분한 어린이의 마음에 스치는 적막이라는 낯선 감정.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잠든 여름밤. 희미하게 들리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여름이 무르익으면 선명해지는 매미 소리. 피부에 와닿는 여름의 열기.


작년 보았던 제주의 여름바다. 부드러운 모래알. 반짝이며 일렁이는 윤슬. 어릴 적 외갓집에서 보냈던 며칠의 여름. 비릿하고 짠데 끝은 달게 느껴지는 바다냄새, 모래사장 위의 모닥불.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울리는 엄마의 편안한 말소리.


나는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 다채롭고 활기찬 수많은 초록.


여름을 좋아해, 여름에 느끼는 수많은 감각들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 그 시작을 찾기 위해 쓴 말들. 여름을 담은 소설들. 여름에 느꼈던 어떤 시절의 냉정한 감정. 형태를 잃어버린 빙수, 차가운 음료잔에 담긴 원래 네모였던 얼음.


잠들기 아쉬운 여름밤. 여름과 여름이 만나 만드는 이야기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을 믿고 싶은 그런 순간.


여름밤, 계속되는 목적 없는 고백, 여름을 좋아해, 나는 여름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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