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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언어의 세계

by 젼정


유튜브로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자주 이용하는데 신기하게 어떤 채널에서는 옛날 다음 카페나 싸이월드 시절의 감성이 느껴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도도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는, 그런 채널도 있는데 어떤 건 (갈 일이 드문) 서울 번화가에 있는 유명한 카페와 비슷하다. 이를 테면 분명 여기는 한국인데 모든 메뉴를 영어로 기재해 주문 전에 괜히 긴장되는, 그런 카페같다고 해야 할까. 그런 채널은 경험해보고 싶지만 어쩐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고작 유튜브 채널일 뿐인데 부자연스러운 기분이 든다. 결국 자주 이용하게 되는 채널(혼자 있을 때 듣게 되는 채널)은 댓글에 무해한 언어가 작은 모래알처럼 깔려 있는 곳이다. 거기 있는 사람들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포근하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줘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영상 편집실력에 연속적으로 감탄하며, 그 노래와 영상으로부터 파생된 기억, 추억, 느낌 등을 자유롭게 그곳에 기록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만 거기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귀엽다. 가끔 나도 거기 껴서 노래 하나 가지고 신나게 호들갑을 떨어보고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록에 더해진 또 다른 개인적인 감정들은 그곳이 현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고 과거 어디쯤에 본 것만 같아 ‘이건 대체 무슨 기분이 무엇이지?‘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에 나는 어디 있었을까. 그래, 그것도 현실이었지. 언제나 기억 끝에서는 불분명해지는 그런 현실.


다음 카페가 마구 생겨나던 시절 온라인상에서는 다양한 카페가 생겼고 나도 꽤 많은 카페에 가입했었다. 희한하게 당장 기억에 남는 건 배정남 팬카페(탈퇴를 안 했으니 아마도 지금도 가입 상태), 그때 다녔던 교회 카페, 그 정도다. 싸이월드 시절엔 미니홈피 대문을 꾸미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다른 사람 미니홈피에 방명록을 남기고 사진첩을 돌아보느라 바빴던 시절이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어찌나 많은 말들과 사진을 남겨 놓았는지. 배정남 팬카페에 들어가 그의 패션과 남다른 간지에 감탄하며 보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가끔 배정남 오빠(실제 나이는 상관없이 그냥 멋있으면 오빠)가 카페에 글이라도 남기는 날이면 길에서 그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가리느라 두 손바닥을 모은 것처럼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순수한 건지 몰랐다. 그저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카페에 드나들며 간지 충만한 그의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되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을. 미니홈피도 다음 카페도 처음엔 다 순한 맛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순위가 매겨지고 관심도가 떨어지며 다른 맛으로 변해갔다. 물론 나도 그 사이 변했다. 지금의 SNS도 그런 것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또 변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변하든 내가 변하든.


나름 핫하다는 이런저런 곳들에 일부러 가끔 가보기도 하고 그곳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운영자 입장에서) 자주 생각한다. 인기 있는 카페, 유튜브 채널, 뜨개상점 등등. 시작된 관심이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사그라들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가 내게 쏟아지듯 전달된다. 그럼에도 마음이 가는 곳은 늘 따로 있다. 무해한 언어가 느껴지는 곳, 마음을 발견하는 곳,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곳, 반갑고 즐거운 마음만으로 충분히 편안해지는 그런 곳.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내가 느꼈던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아도 괜찮은 곳. 그런 곳은 의외의 장소에 있다.


유튜브 ‘쿼럼센싱’ 채널을 재생할 때면 댓글 창을 대체로 열어 놓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 것’, ‘어떤 순간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 그런 것들을 향한 무해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곳. 좋아하는 이와 대화할 때 느끼는 편안함과 다정한 분위기.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변명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에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기쁜. 그곳에서 나는 그런 기분을 느낀다. 노래 하나에 그토록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탄하며 나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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