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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대화란 무엇일까

by 젼정


호시노 겐,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의 넷플릭스 토크쇼 ‘라이트 하우스‘를 보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토크쇼는 나름대로 정형화 돼 있었다. 진행자가 초대된 손님을 추켜 세우는 것으로 토크쇼는 시작된다. 시작은 흥미로운데 이내 관심은 시들해지고야 만다. 홍보 영상을 보면 뭔가 특별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지만 보통의 안전한 대화로 시간을 채우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장소에 가서 자기네들끼리 칭찬하거나 약간의 에피소드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취향의 문제 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존중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지만 토크쇼나 여러 프로그램에서 계속 그러고 있는 걸 보면, 누구 좋으라고 저러는 거지 싶다. 같은 업계 종사자끼리 서로를 추앙하는 것처럼 구는 것도 별로다. 존경하는 건 좋은데 추앙하는 건 어쩐지 징그러워 보인다. 그런 건 사적인 만남에서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연예 프로그램을 보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다. 시청자로서 그런 장면에 길들여져 있기에 자연스럽게 ‘그럴 수도 있지 ‘ 싶다가 ’저런 건 자기네들끼리 할 이야기 아닌가 ‘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토크쇼는 다르다. 내 스타일이다. 주제는 평범한데 대화는 비범하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사뭇 철학적이라고 느껴진다. 기본적인 생각이나 살아가는 방식이랄까 그런 것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소리 내어 그들의 말에 ‘응응’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대화가 더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회차를 보다가 내 생각을 보태 적어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회 차(6회 차)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 바다에서 하는 액티비티 중에 발로 페달을 밟아서 나아가는 큰 탈 것 있잖아요. 그런 걸로 바다 한가운데서 엄청 페달을 밟았는데 그 결과는 바닷물 흐름대로 흘러간 수준인 거죠.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열심히 발버둥 쳐도 그 동력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이나 바람과 조류의 흐름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페달을 안 밟아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놈이란 건 내 한계를 알지만 열심히 밟는데 결국엔 바람의 힘으로 흘러가는 게 계속되는 거겠구나 싶어요. 그래도 밟을 수밖에 없고 그런 거 생각하면 귀찮죠.


* 호시노 겐 : 귀찮죠. 사는 게 귀찮아요.


살아가면서 계획대로 된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흐름에 나를 맡겨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느낀다. 나름대로 원하는 것이 있고 작은 계획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쉽게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 애쓸수록 더 힘들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오늘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네 ‘ 그런 나날들이 반복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역시 어떤 흐름의 틈에 끼어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안에서 발버둥도 쳐보고 다른 곳으로 가보려 마음을 달리 해보려 노력도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저만큼 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몇 걸음 되지 않는다. 이렇게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봐야 되는 게 인생 아닐까. 이 대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력질주 한다 해도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이 되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나의 힘으로 내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니 그것은 귀찮고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정상급에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진지하다가 웃기다가 어이없다가 아쉽게 끝난다. 다른 회차에서 마사야스가 모든 것이 지겨워진 것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지겨워졌어요.‘


아,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였구나. 솔직함은 진실한 무기가 된다. 이 토크쇼를 보고 알았다. 내가 이런 대화를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도 내 방식대로 대화해보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대화해보고 싶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럼에도 원하는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기분이 든다. 내가 원하는 토크쇼는 어디에서 가능할까. 아주 짧은 소설을 토크쇼처럼 써보고 싶다. 솔직해보고 싶다, 그들의 대화처럼, 그들의 농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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