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숙소에서 혼자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많은 것들로부터 낯설어지고 싶었다. 모르는 동네의 풍경에서 낯선 건 나였다. 그곳은 항상 거기 있는 것이고 나는 행인에 불과하니 말이다. 세탁방이 보이자 소설 ‘여름밤 해변의 무무씨’ 가 떠올랐다. 나는 이제 세탁방을 보면 그 소설을 떠올리고 이내 해변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되어 버린 심정이 묘하게 기쁘다. 같은 장소에서 누군가는 일상을 보내고 누군가는 특별한 순간을 그린다. 아주 잠깐 다른 세계로 잘못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나는 여러 개의 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고, 그 문을 몇 개쯤 나도 모르는 사이 열었을 지도 모른다고, 꿈결처럼 그것을 믿고자 한다. 그날의 공기는 늦여름과 가을, 초겨울을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김이 보이지 않는 계절에 나는 그곳을 걸었다. 세븐일레븐에 들어가 따뜻하다 못해 무척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사서 나오며 잠시 어쩔 줄 몰라 했다. 붙잡으면 뜨겁고 놓으면 쏟아져 버릴 커피를 이 손 저 손 바꿔 가며 들었다. 그러면서 소설 ‘노멀피플’의 좋아하는 구절을 떠올렸다. 뜨거운 커피의 온도가 살에 고스란히 전해지도록 잡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과 현실이 닿아 있는 순간들이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어떤 소설은 소설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지기도 있기도 히다. 신기한 일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미용실의 간판을 보며 어떤 익숙함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정장을 입고,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여행을 언젠가 해보고 싶어졌다. 낯선 것이 익숙해질 정도의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할 테니 그것은 나중으로 몇번이고 밀릴 것이다.
숙소에 돌아와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말을 늘어 놓으며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빠져 나왔다. 그 또한 다른 문의 손잡이를 당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