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 아오리 빛
나는 평소 과일을 잘 사지 않는다. 밥보다 과일이 더 좋다는 엄마와는 달리 나는 과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골고루 먹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 과일을 깎아주면 한 접시 맛있게 비우는 남편을 위해 과일을 사긴 하지만 나를 위해서 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내가 아오리 사과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오리 사과는 나를 망설이게 하지 않았다. (특가, 할인이라는 문구에 홀려 클릭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오리 사과는 나를 풋 설레게 한다.
도마 위에 놓인 아오리 사과 한 개를 반으로 가른다. 일반 사과와는 속살도 다르다. 은은한 연둣빛을 머금고 있다. 아오리의 연둣빛은 완두콩과 닮아있으면서도 더 가벼워 보인다. 완두콩과 아오리는 채도가 확연히 다르다. 나는 그 빛깔을 연둣빛 말고 아오리 빛이라 말하고 싶다. 아오리 사과는 그런 빛을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먹기 좋게 가운데 부분을 과도로 도려낸다. 아이는 벌써 입을 벌리고 서 있다.
엄마, 하나만!
나는 가장 작은 것을 골라 아이의 입에 쏙 넣어준다. 아이는 맛있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입안 가득 아오리 빛을 머금는다. 접시에 놓인 아오리는 썰린 모양이 제각각이다. 나는 포크로 하나를 집어 작게 베어 문다.
아삭.
달고 신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적당한 맛이 아오리의 자태와도 닮아 있다. 아오리는 나이로 치면 갓 스무 살이 된 어른 같다. 성숙하다고 말하기엔 어리고, 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이처럼 풋풋하고 서툴다. 사과이긴 하지만 백설공주가 먹고 잠이 들었던 그 사과라고 하기엔 전혀 맛이 다르고, 사과가 아니라고 하기엔 사과랑 형태가 똑같다.
아오리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올해의 여름을 생각한다. 유난히 덥다고 느껴지는 매년의 여름처럼, 아오리는 올해 유난히 맛있다. 8개의 아오리 중 2개가 남았다. 다 먹기 전에 이 글을 끝내야겠다.
우리의 여름은 얼마큼 남아 있을까? 아삭, 아오리 빛이 몸안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이 여름밤을 계속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