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혹시라도

여름밤

탬버린은 누가 쳐주려나

by 젼정

여름밤은 달콤하다. 한낮의 더위도 밤이 되면 조금 수그러든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집안을 가득 채웠던 볕은 밤이 되면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자취를 감춘다. 여름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거실에 앉아 은은한 조명을 켜고, 적당히 끈적한 발라드를 재생시킨다.


발라드를 듣고 있노라니 노래를 부르고 싶어 진다. 마지막 노래방에 간 것은 2년 전인가 보다. 노래방에 갈 때마다 심각하게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83년생인 나를 시시때때로 울컥하게 했던 가수는 박정현이었다. 박정현의 '아무 말도, 아무것도'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와르르 쉽게 무너졌다.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몰입하면서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불렀다.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녀의 가창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낯선 감정을 겪으면서 나는 못나게 구는 내가 싫었다. 그걸 견딜 수 없어 그 노래에 나를 맡겼다. 그렇게 싫었던 그 시절 내 모습도 이제 와서는 조금 귀엽게 느껴진다.


날 위한다 말하지 말아요. 미안해지잖아요.


나는 몰랐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사춘기 시절의 한 순간을 떠올리게 될 줄은. 한때 벅스뮤직에는 음악메일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음악과 함께 편지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는 기능이었다. 2001년 나는 그 기능을 자주 사용했다. 별 의미 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보내기도 했지만 내 속마음이 담긴 노래를 보내기도 했다. ‘아무 말도, 아무것도’라는 노래와 함께 온 편지의 내용은 꽤 심각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나는 좋아하는 이의 마음을 놓쳤고, 그 놓친 것을 찾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알았다. 서로의 마음이 맞닿지 못하면 영영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음악메일을 쓰는 것은 지금처럼 노래를 듣다가 바로 '공유하기'를 눌러 보내는 것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그 과정이 귀찮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언제든 연락을 할 수 있는 지금보다, 더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던 그때의 불편함이 그립다.


종이에 편지를 쓰다가 메일을 쓰게 되는 시대가 열린 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나는 한메일로 수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다. 메일에는 시답지 않은 일상과 함께 암호와도 같은 메시지들이 숨어 있었다. 가끔 예전에 받은 메일을 읽어보면, 그때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나 싶다. 상대가 내게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그들은 다 내게 말했다. 내가 솔직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그때처럼 심각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끈적한 발라드를 찾아들어도 쉽게 마음이 말랑해지지 않는 건, 더 이상 그때의 나를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찌질하게 굴었던 내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그들도 비슷할 것이다. 상대가 내 모습을 어떻게 기억 속에 남겨둘지, 알 수 없어 참 다행이다.


여름밤이 조금씩 사라져 간다. 붙잡아 두려고 해도, 결국 가 버린다. 여름이 다시 돌아온다는 말은 틀렸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여름이 오는 것이다. 내년 새로운 여름이 오면 노래방에 가서 끈적한 발라드 한곡을 불러야겠다. 그때는 제발 인원 제한 없이, 눈치 보지 않고 노래방에 갈 수 있기를 빈다. 그럼 탬버린은 누가 쳐주려나. 발라드에 맞춰 탬버린을 구슬프게 흔들 수 있는 실력이라면 의심치 않고, 나 그대에게 탬버린을 맡기리.


그전에 노래방 애창곡을 좀 뽑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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