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손님 분류법

by 열매

혈액형이나 별자리 혹은 에니어그램 등은 인간의 성향을 분석하는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누구든 한두 번쯤 나는 어떤 유형이고 어떤 사람인가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았을 것이다. 그런 건 믿을 게 못 된다고 하면서도 소개팅에서 A형 남자를 만나면 소심하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분류법에서 소개하는 여러 가지 성질이 한 인간 안에 모두 있겠지만 이런 분류법을 적용하면 상대를 파악하는 데 효과적인 면이 있다.

타로를 보러오는 손님들 또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은 경험 데이터 축적에 따른 나만의 분류법이라 하겠다.

첫째는 단도직입형이다. 이 유형은 질문이 명확하다. 그러므로 답변 또한 명확한 걸 좋아한다. 예를 들면 “올해 저의 수입은 100만원~200만원 사이인가요? 아니면 200만원~300만원 사이인가요?” 단도직입형 손님에게는 구구절절 얘기할 필요 없이 타로가 나오는 대로 즉답을 해주면 된다. 1번이다, 2번이다, 이런 식으로. 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목표가 뚜렷하고 진취적이다. 그러므로 질문도 구체적이고 실천력도 빠르다. 그러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편이며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는 말을 싫어한다.


둘째는 단도직입형의 극단에 있는 구구절절형이다. 진짜 질문이 나오기까지 사전 설명이 길고 구구절절, 이 얘기했다 저 얘기 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제가요 일 년 전에 직장에 다녔는데 몸이 안 좋아서 그만뒀어요. 그런데 또 그냥 있자니 답답하고 뭘 하자니 기술도 없고, 참 사는 게 그래요. 이 나이에 오라는 데도 없고 일을 안 하고 있으니 돈도 궁하고 몸이 더 아픈 것도 같고,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아는 언니가 있는데 옷가게를 하는데 거기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뭐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언니가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서요. 괜히 사이만 안 좋아질지도 모르죠.”

뭐 이런 식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정말 궁금한 게 있다기 보다 하소연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해도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한다. 안 되는 이유가 백 가지는 된다. 그러니 이 유형은 그냥 맞장구를 쳐주는 게 최고다. 타로 결과가 어떤 것이 나와도 만족하지 못한다. 실제 행동에 옮길 의사 또한 전혀 없다.

셋째는 검증형이다. 이들은 타로를 여러 곳에서 많이 본 사람들이라 검증을 원한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맞나, 안 맞나 타로 마스터를 테스트한다. 맞지 않고 엉뚱한 얘길 하면 바로 딴 곳을 찾는다. 그러나 맞으면 한동안 떠나지 않는다. 이들은 타로 마니아 일 경우가 많고 맛집을 찾아다니듯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닌다. 이들은 타로를 심리상담 차원이 아니라 점술의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오고 감에 연연하면 안 된다. 타로의 점괘는 언젠가는 틀리게 되어있으니까.

넷째는 신비주의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도 주지 않으려 한다. 불륜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미래를 물어볼 때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비주의형은 절대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자신의 연애운이 궁금하다고만 한다. 그리고 타로의 해석에 대해서도 좋다, 싫다가 없고 “아 그렇군요.”라고만 한다. 그러니 이런 손님은 타로 해석에 만족했는지 안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신비주의대로 놓아두자.

다섯째는 이모님형이다. 주로 연세가 많으신 이모님들이다. 이분들은 자기 인생사 얘기하는 걸 좋아하신다. 아들과 며느리 얘기가 주를 이루고 남편에 대한 험담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분들은 일단 부담이 없고 푸근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점집을 드나들었던 익숙한 화법이 정감을 더한다. “그래 올해 어떻겠어? 별다른 액은 안 끼겠지? 우리 큰아들 역마살도 이제 잠잠해지겠지, 내가 그놈 때문에 속 끓인 걸 생각하면 아휴. 뭣이냐 울 둘째는 올해 삼재라는 데 안 좋을라나?” 타로와 사주의 융합이 일어나고 범우주적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이모님들에겐 무조건 좋다고 하면 된다. “좋다.”라는 그 한마디면 자신이 듣고 싶은 건 다 들었다는 표정이다. “아휴 좋으면 됐어. 이제 걱정 없네그려.” 떠날 때는 덕담도 잊지 않으신다. “타로 선생님도 올해는 시집 가. 별 남자 없어.”

여섯째는 블랙홀형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내 영혼을 탈탈 털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자신조차 헤어 나오기 힘든 블랙홀을 내 앞에 던져놓기 때문이다. 이 유형은 집착이 강하고 편집증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 의심과 불안 또한 심하다.

그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남자거나 돈이다. 남자에 대한 집착일 경우엔 하루가 멀다 고 상대의 마음을 물어본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때요? 그 사람 마음이 좀 변했나요? 딴 사람에게 눈길을 주진 않나요?” 상대가 해주지 않는 말을 내게서 들으려 한다.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들어도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블랙홀로 빠져든다.

또 하나는 돈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 거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등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타로를 끊고 우선 신경정신과에서 안정제를 처방받으라고 한다. 이 유형을 상담한 후에는 달리기를 하던지 명상을 해야 한다. 벗어나자. 벗어나자.

일곱째는 영성탐구형이다. 타로 자체가 이집트나 유대교 신비주의를 기반으로 하므로 타로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영성탐구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 유형의 사람들은 타로 자체의 상징과 자신의 영적 성장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영적 여행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등이 주된 질문이다. 어쩌면 타로의 본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실제로 이 유형의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뜬구름 잡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이들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아니면 현실의 실패를 영적 탐구로 보상받으려 한다. 어려운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타로는 영혼의 여행 혹은 자기완성을 향해가는 여정이라 말해진다. 타로에 담긴 상징은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 타로를 만든 이들은 진지하게 접근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핍박받던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살아남게 하는 방법으로 타로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타로가 대중화된 것은 게임이나 점술로 이용되면서였다.


그런 걸 보면 별자리든, 명리학이든, 풍수지리든 그것을 연구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했을 것이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 혹은 질서에 관한 종합적 체계를 잡으려는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며 자기 철학의 완성을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체계화된 방법들이 대중으로 내려오면 기복이 된다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성공, 건강,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것이 대중들이 알고 싶고 바라는 바이다. 그것을 나쁘다고 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바람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면모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 앞에 던져진 인간의 불안과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어디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예전 스님들이 중생구제의 한 방편으로 사주를 봐주었다지 않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늘 최초의 원류가 되는 물줄기가 흘러 흘러 바다로 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근원지는 높고 험준한 산맥 위 구름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그곳에 올라가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이제는 가는 길마저 끊어진 지 오래다. 근원지의 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맑고 향기롭다. 가는 물줄기가 산맥을 따라 내려오며 물길을 만든다. 돌들을 치우고 나무뿌리를 감싸고 절벽을 타고 내려갈 것이다. 산기슭에 다다르면 다른 곳으로부터 당도한 강물과 합쳐진다. 큰 소리를 내며 강물이 흘러간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가 녹더라도 강물은 다시 흘러 평야를 지날 것이다. 사람들은 강물을 마시고 농사를 짓고 과일을 자라게 할 것이다.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몸을 담글 것이다. 그리도 드디어 최초의 물줄기는 세계를 감싸는 바다와 하나가 될 것이다.

이처럼 어떤 문화라는 것도 최초의 발생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 문화가 세월의 흐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많은 사람이 그것을 향유했기 때문이다. 타로 또한 그런 문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점술이든 심리 치유든 혹은 자기 탐색의 수단이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이 타로를 통해 즐거움을 누렸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내가 타로 리딩을 시작한 것은 2008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타로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타로 샵이나 타로 카페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홍대나 건대, 강남에서 쉽게 타로 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그림 때문에도 타로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다른 상담과는 달리 내가 적극적으로 그 과정에 참여한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유럽에서 타로가 대중화된 것이 14세기부터라고 하니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난 후나 우리나라에서 대중화가 된 셈이다.

타로는 그 뒤로 코칭 과정이나 심리상담, 직업상담프로그램 등으로 흡수 변형되고 있다. 나는 타로를 저잣거리의 심리학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느 심리학과 교수님 말이 박사논문으로 타로와 심리학의 관계를 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꽤 많은 타로 카드를 갖고 있는데 최근에는 1909년 파멜라 콜먼 스미스라는 여인이 그린 스미스 웨이트 타로덱을 자주 본다. 그러니까 원본은 거의 100년이 넘은 그림이다. 얼마나 많은 눈길이 이 그림들 위에 머물렀을지 생각해 본다. 78장의 그림 위에 머문 눈길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을 테고, 지혜의 말을 들으려 집중했을 것이다. 나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내 인생의 안개는 언제 걷힐지 알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또한 흩어지는 경험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할 때,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을 것이다. 타로의 그림은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여기까지 왔다. 타로의 상징이 상징일 수 있는 것은 바다같이 넓은 그 포용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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