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8

by 열매

# 웅변하지 못한 자



읍내에는 초등학교가 두 곳 있었는데 나는 그중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장터와도 그리 멀지 않아 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은 언제나 북적댔다. 먼지를 일으키는 버스와 장터를 드나드는 사람과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문방구 앞 거리. 그런데도 교문에 들어서면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운동장으로 인해 조용함은 더 넓어지는 듯했다.

나는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학교 담장을 따라 이어진 플라타너스는 마지막 집결지라도 되는 듯 동쪽 구석에 무리 지어 서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시멘트로 만든 긴 의자가 있어서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곳이다.

첫 수업이 끝날 때까지 거기 앉아서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규칙 밖에 있다는 해방감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너는 어릴 때 잘 웃고 명랑했어. 아기 때는 자주 놀랬는데 학교 들어가서는 안 그랬지. 팩팩 성질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착했어.”라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아는 것과 달리 나는 소소한 나쁜 짓도 했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훔친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든지, 커닝을 한다든지, 반 아이를 울린 다든지.

어쨌든 학교는 가고 싶은 곳이기도 했고 가기 싫은 곳이기도 했다. 같이 놀 친구들이 있어서 가고 싶었지만, 시험이 있어서 가기 싫었다.


나는 2학년이었고, 작은 오빠는 4학년, 큰 오빠는 6학년이었다. 우리는 다른 층에서 공부했지만 쉬는 시간에 작은 오빠가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도 있었고 내가 큰 오빠네 교실로 가서 엄마의 심부름을 알려줄 때도 있었다.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다 보면 큰 오빠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걸 보기도 했고, 작은 오빠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학교에는 형제, 자매인 아이들이 무수히 많아서 어떤 가계도가 그려지는지 다 알기도 어려웠다.

그 모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면 텅 비었던 운동장이 갑자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아침 조회나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운동회나 웅변대회 같은 게 있으면 전교생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고 스피크를 통해 나오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모든 소란스러움을 잠재울 만큼 웅장했다.


그 해 봄, 큰 오빠는 반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가게 되었다면서 맹렬히 연습했다. 원고를 쓴 뒤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외웠는데 그 소리는 엄마의 베틀 소리와 어우러지며 집안을 가득 채웠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착착 책책. 그 시절 엄마는 공장에 다니는 것보다 생산량도 늘고 집안일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베틀을 안방에 들여놓았었다. 엄마의 베틀 소리는 큰 오빠가 달려갈 길의 철로처럼 앞장서고 있었다. 착착 책책. 착착 책책.

통지표의 모든 칸을 ‘수’로 채워왔던 큰 오빠는 엄마가 짜는 옷감의 최종 완성품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우렁찬 큰 오빠의 목소리를 연료 삼아 지칠 줄 모르고 베틀에 앉아서 일했다. 원고를 모두 외운 오빠는 저녁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청 높여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큰 오빠가 최우수상을 탈 것이란 걸 의심하지 않았다.


웅변대회가 있던 날, 전교생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로 인해 운동장은 가득 찼고 학교 담장 너머로 얼굴을 삐죽 내민 사람들도 보였다. 엄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왔다. 저학년을 제외하고 4학년부터 차례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나는 단상 옆으로 쭉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큰 오빠를 보자 가슴이 떨려왔다. 제일 먼저 단상에 오른 학생이 한 손을 올리고 눈은 먼 곳을 향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이 어린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로 끝을 맺는 순간 모든 사람이 박수로 환호했다.

아이들이 차례차례 단상에 오를수록 큰 오빠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웅변을 마치고 내려오던 아이를 흘깃 바라보던 오빠가 마른 세수를 하고 자기 발끝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제 6학년 순서가 되었다. 큰오빠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나는 큰 오빠가 유난히 긴장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웅변대회에 참가했던 모든 아이들의 손에는 미리 써온 원고가 들려있었지만, 오빠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오빠가 완벽하게 원고를 외워서 연습하던 게 떠올라 잘 할 거라 생각했다.


드디어 큰오빠 차례가 되었고 오빠는 주저하듯 단상 위로 올라갔다. 거울을 보며 연습한 대로 운동장을 한번 죽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중앙 국민학교 학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일절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빠는 가장 돋보이는 웅변가였다. 목소리의 톤도 좋고 또렷한 발음도 훌륭했다. 마치 자신이 독립운동가가 된 듯한 결연한 표정마저 인상적이었다. 오빠는 계속해서 웅변을 이어갔다.

“이런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1분쯤 웅변을 이어가던 오빠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숨을 돌리려나 싶었지만 그 뒷말은 이어지지 않고 정적만 더해갔다.

“정신을 이어받아......”

오빠는 한 번 더 그 구절을 반복했지만 물줄기처럼 술술 이어지던 다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이들과 구경하던 어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오빠는 동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급기야 웅성거림조차 멈추고 운동장은 불안한 정적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단상으로 올라와 큰 오빠를 데리고 내려갔다.

“우리 6학년 3반 어린이가 긴장한 탓에 끝맺지 못했지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수습으로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고 오빠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다른 아이들은 슬쩍슬쩍 원고를 보며 마무리를 했지만 오빠는 그것이 반칙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빈손으로 올라간 게 무리였다. 긴장한 탓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오빠의 얼굴은 분노와 실망, 억울함으로 일그러졌다.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습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건 사람들 앞에서 당한 망신뿐이었다.

웅변하지 못한 자.

오빠는 그 뒤의 인생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오빠의 서재에는 어림잡아 만권이 넘는 책이 쌓여있다. 누구보다 박식하고 모든 시험을 통과해 한의사까지 되었지만, 그는 어릴 적 보였던 그 얼굴, 억울하고 실망에 빠진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빠는 늘 자기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된 어떤 세계를 도무지 웅변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인지 웅변대회가 있던 날 운동장을 정적에 가두었던 침묵이 그의 주변을 장벽처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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