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에서 온 편지 2
국화가 피고, 모과가 열리고, 단풍잎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 떨어진 나뭇잎을 녹색 대문 밑으로 밀어내고.
아버지가 돌보지 않는 정원은 나뭇가지와 무성히 자란 풀로 인해 서로 엉키며 비좁아졌지만, 엄마는 손도 대지 않았고 아랫방 할머니가 가끔 철 지난 화초를 뽑아내어 숨통을 터 줄 뿐이었다.
대체로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던 중 옆방에 사는 신혼부부에게서 첫 아기가 태어났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길고 간절할 때가 많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텁텁한 젖 냄새가 나는 옆방으로 가 눈을 꼭 감고 조그만 혀를 말아 올리며 울고 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줌마가 부어오른 젖을 물리면 그제야 아이의 울음은 쌕쌕거리는 숨소리로 잦아들었다. 아이가 두 손을 꼭 쥔 채 맹렬히 젖을 빠는 동안, 나는 아이의 포동 한 발을 잡았다. 순수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도무지 이 세상 물질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이 부드러움은 얼마나 쉽게 다칠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며시 손을 놓았다.
비슷한 하루가 이어지는 중에도 아이는 금세 자랐고 우리도 덩달아 키가 커졌다. 그러는 새 첫눈이 오고, 정원과 마당은 새하얀 눈으로 덮이고, 나는 정원을 돌며 발자국을 남겼다. 아버지였다면 모과나무 가지를 저대로 두진 않았을 거야. 집에 오시자마자 가지치기를 할지도 모르지.
아버지에게서 온 편지가 쌓여갈수록 우리에게 남은 천국의 날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반년이 흘렀고, 반년이 남았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에도 엄마는 아버지 신발을 댓돌 위에 놓아두었는데 다행히 신발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물건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옆방 아이가 울었다. 나는 아이의 무력한 사랑스러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 자식 목청 좋은 것 좀 보소.” 눈발은 더 굵어지며 내가 남긴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부재가 만드는 큰 구멍이 늘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중동으로 떠난 아버지가 아니라 더 다정한 ‘아버지’가 나에겐 없다는 결핍의 구멍이기도 했고, 이미 정해져 버린 것. 바꿀 수 없는 것.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하지만 뭔가 억울한 것. 이런 감정들로 채워진 구멍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삼켜버릴 만큼 큰 구멍은 아니었다.
“엄마,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아버지한테 특별한 편지를 쓰는 게 어때?”
“특별한 편지?”
“생각해 봤는데 우리 목소리 녹음해서 보내면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아.”
“목소리를 녹음한다고?”
엄마는 저녁상을 치우다 물었다.
“돌아가면서 아버지한테 인사하면 되잖아.”
“그래라. 너희들이 알아서 만들면 엄마는 한 마디만 할란다.”라고 말하며 엄마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특별판 편지는 처음 생각과 달리 점점 학예발표회처럼 다양한 레퍼토리를 담게 되었다. 오빠들과 나는 대본을 짜고 함께 부를 노래를 선곡하고 감동적인 편지도 썼다. 이제 이 일은 우리의 열정을 한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했으며, 점점 이상화되어가는 아버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치닫게 되었다.
“아아, 녹음 시작합니다. 아아.”
회색 녹음기를 앞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은 식구들은 각자의 손에 준비된 종이를 들춰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버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막내 숙입니다. 오랫동안 저희 목소리를 듣지 못하셨을 테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특별한 음성편지를 보내드리기로 했어요. 기쁜 마음으로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인사해. 이제 돌아가면서 해야 돼.”
내가 엄마를 잡아끌자 엄마는 녹음기 앞으로 고개를 숙여 입을 가까이 갖다 대고 말했다.
“숙이 아부지 몸은 안 아프고 잘 지냅니까? 여기는 벌써 눈이 펄펄 오는 겨울이라예. 거는 일 년 내내 덥다 카던데 우짜던지 건강 잘 챙기소. 이래 하면 되나? 이것도 녹음된다고? 알았다. 야들이 뭐 이런 걸 하자고 해서 한마디 보탭니다.”
“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저와 동생들 모두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일도 잘 돕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연달아 인사를 했다.
우리 목소리가 금세 아버지에게 전달될 것처럼 느껴지자 연극적인 이 상황에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허물은 사라지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책임감 있고 듬직한 아버지가 녹음기 안쪽 어디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내가 바라던 다정하고 인자한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준비했어요. 잘 들어보세요.”
큰 오빠의 손짓을 시작으로 ‘고향의 봄’을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래를 함께 부르던 엄마는 슬며시 웃으며 ‘나는 잘 모르겠다.’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한 곡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이어서 불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1부 공연을 마친 뒤 막간을 이용해 쉬는 연극배우들처럼 우리는 녹음기를 일시 정지시키고 귤을 까먹었다. 귤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고 오빠들이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찬 기운이 방안으로 훅 밀어닥쳤다. 그날 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들뜨고 행복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빈틈없이 가슴속이 가득 채워졌을까. 단지 '아버지'라는 추상적 이름만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까.
2부 순서는 우리의 일상을 담은 한 장면을 연출해 내는 것이었다. 멈추었던 녹음을 다시 시작했다.
“엄마, 선생님이 학교로 오래.”
“왜? 니 무슨 잘못했나?”
“아니야. 이번에 글짓기 대회에서 상 탄다고 엄마도 시간 나면 오셔서 보래.”
“아이고 우리 딸이 상 타나?”
그러다 갑자기 작은 오빠가 등장했다.
“엄마 나 어제 장에 갔다가 큰일 날 뻔했다.”
“니는 또 무슨 일로?”
“약장수 아저씨가 구충제를 파는데 시험적으로 먹을 볼 애를 찾는 거라. 그 아저씨가 애들을 쓱 쳐다보더니 나보고 나오라고 했어.”
“에이, 그 얘긴 옛날 얘기잖아. 난 어떻게 됐는지 다 알아. 니가 그 약을 먹고 회충을 똥만큼이나 많이 샀잖아.”
큰 오빠가 말했다. 그러자 우리는 다 함께 와르르 웃었다.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모든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마지막 인사를 할 때가 되었다.
“숙이 아부지요. 아무튼 고생이 많습니다. 애들 걱정은 하지 말고 잘 지내다가 오이소.”
“아버지 다음 편지 보낼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이제 다 된 것 맞지? 딸깍.
반년 뒤, 중동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가방 안에는 각자에게 돌아갈 선물과 다리미와 카메라와 우리들이 보냈던 녹음테이프가 들어있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테이프를 다시 들으며 부끄럽고 서글프고 우스웠던 기억이 난다. 테이프는 잦은 이사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보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비로소 어딘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버지는 언젠가 말했었다. “너그들이 보낸 테이프, 저거 듣고 내가 많이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