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로 가다
엄마가 원하던 대로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은 도시로 갔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큰오빠를 소읍에 둘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엄마는 큰오빠를 도시에 있는 학교에 보내야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엄마의 인생 목표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도시로 간다니 기대에 부풀었다. 딱 한 번, 가족 여행으로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도시는 우리 동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채로웠다.
트럭 한 대에 얼마 되지 않는 세간살이를 싣고 우리는 마을의 경계선을 넘어 불빛 가득한 도시로 향했다. 트럭은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냄비나 문짝이 덩달아 흔들렸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우리 집의 파란 지붕과 군락을 이룬 미루나무 숲과 개천을 가르던 다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곤 생각보다 쉽게 마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개학일에 맞춰 전학 간 덕분에 반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4층짜리 교실과 그늘 없는 운동장이 전부인 학교를 보고는 적잖이 실망했다. 굵은 플라타너스가 서 있던 예전 학교와 달리 전학 간 곳은 가느다란 묘목이 뿌리내린 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학교였다.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건조한 학교를 보며 내 어린 시절이 드디어 끝났다고 느꼈다. 그제야 내가 멀어진 것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기대와 달리 도시는 은밀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물론 다른 면에서 은밀했지만, 바람을 가르며 내달릴 만한 방죽이나 버려진 방공호나 나무 냄새가 비밀스러움을 더해주던 목재소 같은 것은 없었다. 나무 꼬챙이를 들고 땅을 파헤칠 일도, 뽕나무 열매를 먹으러 산으로 갈 일도 없었다. 썰매를 타거나 물고기를 잡을 만한 개천도 없었다. 그러니 나의 호기심을 채워줄 곳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이 전부였다. 도시의 골목은 우리의 정서가 고여 들지 못했고 우리만의 장소로 남아주지도 않았다.
또한 우리는 많은 면에서 상실을 겪어야만 했다. 마루가 있던 집과 거기 딸린 정원은 이제 남의 것이 되었고 도시로 나온 뒤로는 오랫동안 그런 집을 갖지 못했다. 가까운 이웃도, 서로의 집안 사정을 알던 동네 사람들과 연대도 상실했다. 마을 사람이 함께 공유하던 자연도 웃음도 도시에는 없었다. 부엌이 딸린 작은 방 두 칸이 전부였던 곳에서 시작된 도시 생활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한편으로는 소읍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적인 것들이 나를 채웠고 나는 재빠르게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영화관, 백화점, 롤러스케이트장. 그 모든 것들이 시내버스를 처음 탔을 때처럼 어지럽고 빠르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우리의 신분이었다. 장소의 이동은 신분의 이동을 동시에 가져왔는데 우리 집은 명백하게 도시의 하층민이 되었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을 다니며 일정치 않은 돈을 벌어왔고 엄마는 공장을 다니거나 식당에서 일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벌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는 게 다였지만, 부모님은 늘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처럼 보였다. 물론 소읍에서와 다를 바 없이 일했음에도 도시에서의 생활은 우리 가족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다복한 저녁상도 없었고 외식이나 여행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부엌이 딸린 방 두 칸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돌볼 정원이 없어진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던 모양이다. 대문 옆에 화분을 몇 개 갖다 놓았다는데 아침에 잠깐 해를 볼 뿐이라 화초들은 잘 자라지 못했다. 아버지는 때때로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싹이 돋는 것을 쳐다보곤 했다. 자신이 두고 온 모과나무와 조팝나무와 국화꽃이 그 속에 들어있기라도 하는지 어두워질 때까지 무엇이라도 찾아보겠다는 듯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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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용된 곳은 비좁고 어두웠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똑같은 구조의 방에 세 들어 살던 앞집과 우리 집은 방문을 열면 서로의 살림살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어떤 비밀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복도가 좁았던 탓에 여름이면 거의 한집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집의 모든 허물과 수치가 그대로 드러났고 앞집의 소란과 고통도 아낌없이 드러났다.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는 앞집 아줌마가 나를 보며 종종 혀를 차곤 했었다. 아이고 어쩌자고. 쯧쯧. 아이가 갖는 특유의 적응력으로 인해 나는 곧바로 도시 아이가 되었지만, 답답하고 삭막한 공기가 폐 속으로 드나드는 동안 그 도시의 지형처럼 분지 속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았고 어느 날 엄마를 보며 나만 그런 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날은 엄마가 공장을 가지 않는 날이라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청소하던 엄마는 내게 빨랫비누를 사 오라고 시켰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동네 가게에서 빨랫비누를 사고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아껴 먹으며 돌아오는데 골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속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좀처럼 큰소리를 내지 않는 엄마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냅다 뛰어갔다.
“이 여편네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야, 니가 봤어? 봤냐고?”
“우리 아들이 봤다잖아. 니 년이 빨랫줄에 걸린 내 옷 걷어갔다고. 분명히 우리 아들이 봤다고. 아니, 한두 번도 아니고. 이거 순전히 도둑년 아냐.”
“뭐야? 니 아들 새끼 나오라고 해봐! 눈깔을 확 뽑아버릴 테니까!”
나는 죽을 듯이 악을 쓰는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로 삿대질을 하던 엄마와 옆집 아줌마는 급기야 머리채를 붙잡고 이리저리 서로를 끌어당겼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이 났지만, 엄마에게 달려갈 수가 없었다.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등으로 흘러내렸고 어떤 충격이, 우리 집의 총체적인 비루함이 그 충격 속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말려 올라간 엄마의 옷 아래로 허연 속살이 드러났고 나는 가슴속으로 뜨거운 부끄러움이 올라와 온몸을 태울 것만 같았다. 엄마 그만해. 제발.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네 사람들도 하나둘 창문을 열고 구경만 할 뿐 선뜻 나서서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앞집 아줌마가 두 사람을 떼어놓으면서 싸움은 잦아들었다. 서로의 손아귀에 잡힌 머리카락을 탁탁 털면서 두 사람은 풀리지 않는 분을 삭이고 있었다. 앞집 아줌마가 “숙이 엄마 그만하고 갑시다.” 하며 엄마를 잡아끌었고 그제야 엄마는 거기 서 있던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전에 없던 분노와 억울함과 악에 받친 표정이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는 머리를 손으로 가다듬으며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마치 털어낼 수 없는 어떤 부끄러움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고 두 팔을 탁탁 털었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옆구리의 옷 솔기가 길게 터져 있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더 빠르게 변해갔다. 술을 먹고 오는 날이 많아졌고 그러면 집안을 뒤집는 일도 잦아졌다. 무언가가 조여 오는 듯 아버지는 자신을 압박하는 것에 놀란 사람 같았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늘 같았다.
“내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 줄 아느냐? 내가 왜 쎄빠지 게 일하는 줄 아느냐고?” 우리는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르고 무릎을 꿇은 채 아버지의 두서없는 연설을 들어야 했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엄마와 오빠를 때렸다. 그런 밤이면 집 밖을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둠 속을 흐르던 개천을 대신할 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문득 저 멀리 환하게 밝았다가 어두워지고 다시 환하게 밝아지는 곳이 보였다. 나는 그 빛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질까 조바심이 나서 달려갔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빛이 환한 곳은 그저 평범한 용접소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환해지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하며 섬멸하는 푸른 불꽃을 지켜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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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는 봄이었다. 그런데도 쌀 씻는 물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어디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쌀 위에 손을 얹고 물을 부었다. 손등을 덮을 정도로 물을 받고 행주로 솥 밑을 닦고 전기밥솥에 올렸다. 털컥 스위치를 눌렀을 때는 이미 여섯 시가 넘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산수책을 펼치고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했다. 밥솥에 물 끓는 소리가 서서히 일어났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엄마도 오빠도, 아버지도. 점점 어두워져 글자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일어나서 형광등스위치를 켰다. 몇 번을 껌뻑거리다가 겨우 전등불이 들어왔다.
엄마가 없는 집은 지붕이 없는 집 같았다. 바람이든 비든 그게 무엇이든 곧바로 나를 때렸다. 나는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오빠들은 일을 나누어 빨래하고 청소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앞집 아줌마가 반찬을 갖다 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어쩌자고 쯧쯧.’하고 혀를 찼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많았지만, 전과 달리 금방 잠들어 버릴 뿐이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나를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석 달쯤 지났을 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몰래 나오라던 엄마의 당부대로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엄마는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하얀색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날 나는 햇볕이 뜨거운 거리에서 많이 울었고, 그냥 서러웠다. 엄마가 나를 안아 주었을 때 눈앞을 어지럽히던 물방울들. 언젠가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밤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엄마의 품은 작아졌고 나는 커졌다. 나는 흐릿해지는 엄마의 물방울을 보며 고통의 방울들이 피어나는 물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저녁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고 일을 하러 다녔다. 엄마는 그날 이후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해 여름의 엄마는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 같았고, 나와 상관없는 엄마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 같았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때 집을 나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구미공장에 있었다고 했다. “너그 아부지와는 한 날, 한 시도 같이 살고 싶지 않더라. 독한 마음을 먹었지. 돈을 많이 벌어서 너그들 만나려고 했는데 밤마다 얼굴이 어른거려 살 수가 없더라.” 엄마는 그렇게 살았었다. 삼십 대였던 엄마의 한때, 한 여자로서의 엄마. 그녀가 걸어갈 수도 있었을 다른 길에 대한 미련 같았던 물방울무늬 원피스. 끝내 엄마가 다시 입어볼 수 없었던 그 옷은 내 기억 속에 남아 한 여자의 젊음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