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12

by 열매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아침마다 만원 버스에서 몸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 뒤, 여학교 세 곳이 연이어 있는 언덕을 올라가 두 번째 학교로 들어갔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중학교는 아담하고 정겨웠다. 목련과 라일락을 비롯해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았는데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교정이 축복 속에 파묻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릴케의 시집에 꽃잎을 넣어 말리며 다분히 감상적인 시절로 들어서게 되었다.

1학년 담임은 무용선생님이었다. 그녀는 길쭉한 팔다리를 우아하게 움직이는 법을 알았지만, 발레리나가 되지 못한 채 중학교 선생님으로 남아있는 나이 든 부인이었다. 긴 머리를 틀어 올려 사슴처럼 긴 목을 드러낸 그녀는 내가 지금껏 봐 왔던 아줌마들과는 다른 태도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아함이었다. 나는 조용히 감탄했다. 일하는 몸이 아니라 춤을 추는 몸. 내게는 너무나 생소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무용실에 있는 전면 거울 앞에 서면 기분이 좋았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을 밟는 것도 좋았고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몸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윤곽이 흐릿했던 얼굴은 개성을 찾아가고 동그랗고 조그마한 몸도 골격을 갖춰갔다. 무엇보다 가슴이 조금씩 봉긋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벌써 브래지어를 했는데, 블라우스 아래로 비치는 두 개의 끈은 이제 막 솟아나는 여린 꽃대처럼 보였다. 나는 은밀한 아름다움이 터져 나오는 그들 속에서 다른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을 기뻐했다.

한편으로는 시집을 읽고 소설을 읽으면서 사색적인 세계로 들어섰는데 사실 그건 사색이라기보다 엄마 구두를 신어보는 것처럼 어른 흉내는 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더라도 가족과 집을 벗어나 정신적인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내게 더 할 수 없는 피난처였다.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자의식도 생기면서 우쭐해지기도 했다. 예전과 달리 내게 달콤함을 주는 것은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고독, 죽음, 우정, 사랑 이런 말들이었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도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윤리 선생님은 철학적이라 할 만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윤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유일한 총각 선생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인기는 없었다. 왜냐하면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우리를 설레게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열의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작문을 해오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내가 죽는다면....’ 나는 노트에 제목을 쓰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 제목을 되풀이할수록 정말 일주일 뒤에 죽을 것처럼 심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나는 여러 번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의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행패를 부리는 날이면, 나는 자주 개천으로 갔고 검은 물속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죽음이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했으면 좋겠고 그것 말고는 내가 느끼는 슬픔이 풀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런 식의 죽음 외에, 아버지와 연관된 것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그저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작문을 그리 잘 하지는 못했다. 상상을 해 보았을 뿐이다.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을 보낼 것이라고 썼다. 나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던 나이였다. 그리고 그 작문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 남았고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은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죽는다고?’ 어리둥절해하며 일주일을 그냥 보내버리는 것 말고 할 게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윤리 선생님은 삶의 소중함을 느껴보라고 그 숙제를 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소중하게 안고 싶은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속에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을 보내겠다는 말은 차분하고 초연한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희망하지 못하는 한 소녀가 거기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희망보다 절망이 더 많은 14년을 보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나이 때 갖게 되는 과장된 감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버지의 폭력이 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 없는 나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 없는 가정은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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