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13

by 열매

# 굿나잇 키스


대체로 평화로운 날들이 지나가던 중 한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학교는 흥분과 활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아이는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어서 가수 이상은을 좀 닮았었다. “어디, 어디? 누구야?” “쟤야?” “느낌부터가 다른 걸.” 다른 반 아이들까지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려 몇몇 아이들은 수줍어하며 다가갔다. 이처럼 모두의 눈길이 그 아이에게 쏠렸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서울에서 전학을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서울에 가본 적이 없어서 서울이라면 마치 외국을 말하는 것 같이 먼 곳으로 느껴졌다. 이름만 있을 뿐 실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미지의 곳. 가끔 티브이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서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상상했다. 그러니 서울에서 살다 온 그 아이는 미지의 것과 좋은 것과 세련된 것을 전파하러 온 사신처럼 느껴졌던 게 당연했다.

그 아이는 교정 어디에 있든 곧바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

서울말.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마치 검은 바탕에 흰 점을 칠해 놓은 것 같아서 아무리 많은 아이들 틈에 있어도 또렷하고 경쾌하게 울렸으며, 그로 인해 그 아이의 존재를 더 고귀하게 만들었다. 더 똑똑해 보였고, 더 부유해 보였고, 더 고상해 보였다. 서울말로 인해서.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퍼지며 그녀의 존재를 잊을 수 없게 했다. 미영, 정희, 지숙과는 상당히 다른, 서울스러운 ‘소미’라는 이름이었다. 권 소미. 우리는 그 특별한 이름 앞에서 수줍어하며 입을 동그랗게 벌려야 했다. 소미야 안녕.

하지만 두 어달이 지나고 중간고사가 다가오자 그런 소란스러움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맨 뒷자리의 소미와 맨 앞자리의 내가 어떤 계기로 친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 우리 둘은 단짝이 되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는 소미도 우리 중의 한 아이일 뿐 더는 신비롭지 않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같이 시험공부를 하자며 소미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소미는 엄마와 여동생이 가족의 전부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 아빠를 가끔 봤었는데, 여기 이사 온 뒤로는 자주 못 봐.”

소미의 집은 쾌적하고 아담한 아파트였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고 화사한 파스텔톤의 벽지로 인해 더 안온하게 느껴졌다. 연분홍색 커튼 아래 침대가 놓여있던 소미의 방에는 그 시절 인기 있던 가수들의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불현듯 이곳에 내가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화사한 집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미지의 행복과 보살핌으로 가득했고 우리 집에 없는 것들을 뚜렷하게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소미는 아빠 이야기를 할 때면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나도 아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혼 전에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지만, 그전에는 행복한 때가 많았거든.”

“왜 이혼하신 거야?”

“몰라.”

소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주변에서 이혼한 어른을 본 적이 없었다. 결혼한 이모들 넷은 다툼으로 소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혼까지 가진 않았다. 물론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소미 집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이혼한 소미 엄마마저 남다르게 용감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수간호사인 소미 엄마는 병원 일로 바빠서 늦게서야 집에 오셨다. 소미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의 보자 나는 경탄에 가까운 감동이 밀려왔다.

“네가 소미 친구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만나서 반가워.”

그녀가 살며시 나를 안아주었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우리는 잠자리에 들 때가 되어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조금 열어놓은 방문으로 거실의 불빛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소미 엄마는 소파에 앉아 조그마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불을 꺼두었지만, 거실에서 들어오는 불빛 때문에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우리는 자매처럼 함께 누워 소곤거리며 한참을 얘기하고 웃었다. 그때 방문이 살며시 열리고 소미 엄마가 들어왔다. 그녀는 턱밑으로 이불을 살며시 올려 주며 내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나직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잘 자렴.”이라고 말하며. 그리고 소미에게도 똑같이 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 받아 본 굿나이트 키스였다.

그 입맞춤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일하러 가고, 빨래하고, 아버지의 고함을 감내하고, 간혹 옆집 아줌마와 소리 높여 싸우는 엄마이지 내게 잘 자라며 입맞춤해 주는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한 번의 입맞춤으로 인해 나는 ‘엄마란 이런 사람이기도 하구나.’ 하는 각성에 가까운 놀라움이 일어났다. 그 입맞춤이 일깨운 엄마라는 속성은 따스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익숙하며 그리운 것이었다.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무엇 같았고, 엄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무엇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결핍의 상징이 되어 많은 밤 동안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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