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24

by 열매

# 그림수업/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손에는 권총을 들고.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향해 그 총을 겨누고 있다.


그림을 본 시간강사는 “그림 잘 그렸네. 인상적인걸.”라고 말했다. 사진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린 그림일 뿐인데도 뜻밖의 말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다. 학창 시절 내내 그림에는 소질이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인제 와서 내 그림이 인상적이라니.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벽에 그림을 붙였다. 단순한 선과 단순한 색. 아마 아이였을 때 나는 저렇게 그렸을 것이다. 그림 속 여자는 여전히 정면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내게 무언가를 종용하는 듯이. 어떤 자백이든 듣고 말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음에도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건 사진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졸업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업사진 쪽인지 순수예술 쪽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사진은 그저 내게 또 다른 눈이 되어 나의 방랑과 배회와 낭만적 음울에 대한 적절한 동반자 구실을 해주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모든 배회는 단순한 배회로 그치지 않았다. 일상적이던 세상이 순간 내가 탐색해야 할 어떤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가게 앞에 내어놓은 의자도, 뛰어가는 여자도 모두 나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 산책자, 고요한 가담자, 대상 없는 미행자. 카메라와 더불어 거리를 걸으면 나의 정체성은 그런 것으로 변했다. 어느 때는 굳이 카메라로 찍지 않아도 인상적인 장면이 머릿속에 찰칵하고 찍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의미의 결집체 같은 장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거리를 헤매다 알게 되었다. 카메라는 모든 대상을 평등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거기에는 사회적 가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절대 가치의 세계가 있었다. 누추한 옷차림의 노인이나 한껏 멋을 부린 귀부인이나 모두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카메라 프레임으로 그들이 들어오는 순간, 모든 대상은 숨겨둔 고유의 아우라를 비추며 자신이 가진 유일함을 드러냈다. 고귀한 존재가 되는 순간들. 나는 그런 순간에 빠져들었다. 진정한 연금술은 바로 시선에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불안정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강물을 따라 표류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불타는 물처럼 모순된 상태의 감정을 오락가락하기 일쑤였다. 하긴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강물을 따라 흘렀다. 누구는 결혼을 했고, 누구는 부모님이 죽었고, 누구는 절망적일 정도로 엉망인 학점을 받았고. 모두 과장되게 쿨한 척했지만, 정말 냉정해지진 못했다. 우리는 불타오르거나 물속으로 가라앉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이 많은 정애 언니만 그런 혼란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볼 줄 알았다. 별것도 없어. 정애 언니의 말만 진심으로 들렸다.

우리는 x를 찾아야 하는 세대였지만 누구도 그 x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삶의 의미나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내게 그 대상은 일회적일 때가 많았다. 남자일 때도, 춤일 때도, 영화일 때도, 책일 때도. 사진조차도 영구적이진 않았다. 어쩌면 나는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감정 자체에 열정을 쏟았는지 모르겠다. 뭔가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어느 여름날의 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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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는 돈이 없어서 학교 근처 버려진 농가에서 지냈다. 언젠가 그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마당에는 개망초가 수북이 자라고 외양간으로 사용했을 것 같은 헛간은 발 들이기 두려울 정도로 음습했다. 그나마 마루 끝에 걸터앉으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눈앞에 펼쳐지며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선배는 대문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주워온 매트리스를 깔고 지냈다. 그는 말이 별로 없었고 그 농가의 흙냄새로 인해 늘 퀴퀴한 냄새가 났다.

어느 여름밤이었다. 그의 무언가가, 어쩌면 그 기이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그를 꼭 만나고 싶어졌다. 나는 그가 사는 농가를 향해 밤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등 불빛과 밤하늘의 달빛이 전부였다. 학교에서 자취방까지 마을버스로 30분이 걸린다는 건 알았지만, 농가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지 못한 채 개구리 우는소리가 밤을 가득 채우는 밤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간간이 자동차 전조등이 내 그림자를 길쭉하게 만들었다가 휙 사라졌다. 나는 그 순간에 빠져들었고 그럴 때만 만족할만한 강렬함이 가슴속을 채웠다. 그때는 두려움이 별로 없었다. 어둠 속을 걸으면 희미해진 감각의 경계선으로 인해 나는 밤과 뒤엉켜 인간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변모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가는 어둠 속에 쌓여있고 선배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그는 없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 모르지.' 생각하며, '한 시간 안에는 올지도 모르지.'라고 또 생각하며. 짙은 어둠이 고여있는 헛간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별이 총총한 하늘만 쳐다봤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금씩 한기가 들었다. 밤벌레 소리며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빈집은 작은 소리들로 부산했다.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선잠에 빠졌다가 뿌연 새벽을 맞았고 개망초 잎에는 이슬이 맺혀있었고 끝내 선배는 오지 않았다. 이상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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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젊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나의 젊음은 이상스레 어둑하고 방향 없는 갈망들로 혼란스러웠다. 그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지. 그런 가운데 사진에 대한 열정은 식어가고, 보다 직접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만 커졌다. 그러나 무엇으로, 어떻게. 그때 총을 든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그림을 그렸다. 서랍 안에 굴러다니는 색연필이나 수성펜을 이용해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심상을 따라갔다. 어떤 것은 아프리카 민속 문양 같은 것이고 어떤 것은 자화상 같은 얼굴이었다. 대상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대신 마음속으로부터 그림이 떠오르길 기다렸다. 낮에 꾸는 꿈처럼. 내게 찾아오는 그림들에 매료되었고 그것은 대부분 ‘나’를 닮아 있었다. 추상적인 것이든, 구체적인 것이든 간에 말이다.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는 때가 많아졌는데 드디어 말문이 열린 사람처럼 내 속에 잠겨있던 것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어느 날 정애 언니가 48색 전문가용 유성펜을 사주었다.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보더니 언니가 말했다.

“너 혹시 신기 있는 거 아냐? 네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마음속에 불꽃이 타오르는 애라는 건 알았지만 말이야.”

그림이 점점 쌓여가자 누군가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졌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그림 수업은 일반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일 학년 때 미학수업을 담당했던 교수님이 떠올랐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현대화된 화풍으로 누드를 주로 그리는 화가로 활동했던 이 교수님은 일반적인 교수들과는 달랐다. 고루하고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게 그분의 화풍이라면 화풍이었다. 그분이라면 뭔가 다른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수성못 근처에 있는 그의 화실로 찾아갔다.

이젤과 캔버스와 겹겹이 쌓인 그림과 화구들로 인해 화실은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솔직히 말하면 어수선했다. 교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말한 뒤, 창문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아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을 주섬주섬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교수님은 나를 빤히 쳐다본 뒤 그림을 한 장씩 들춰봤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흰 턱수염 때문에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재미있네. 그냥 그려. 뭐 배울 생각하지 말고. 예술이 배운다고 되겠어. 진실해지는 게 우선이야.”

교수님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 와서 그림을 보여 주는 걸로 하자.”

그렇게 일 년간의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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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옮긴 자취방은 얇은 유리문 하나로 겨우 도로와 나누어져 있어서 밤이면 트럭 지나가는 소리가 더 크게, 더 자주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방은 수시로 흔들렸고, 견고하게 맞물려 있지 못한 이곳저곳의 틈들은 덩달아 짖어대는 동네 개들 마냥 왈왈거렸다. 그 방은 사방에서 흔들어대는 소리를 견디고 견디다 악하며 어느 날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방이 두 개라는 것 때문에 이사했고 그중 한 곳에 작업실을 차렸다. 작업실이라고 해봐야 큰 테이블과 의자 하나 그리고 이젤을 들여놓았을 뿐이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아크릴 물감도 새로 샀다. 하지만 얼마 동안은 텅 빈 캔버스만 바라보며 지냈다. 그리고 나는 가을 학기에는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사한 방은 살만하나? 내가 가봐야 안심이 되는데.”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엄마는 내내 마음을 놓지 못하는 눈치 더니 이렇게 말했다.

“테레비도 없고 뭔 눈요기 할 거리가 있어야 될 끼다. 내가 이번 주말에 안 보는 테레비 저거 갖고 가볼란다.”

극구 말려도 엄마는 간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전화를 끊었다. 휴학한다고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었다.

가을이지만 한낮에는 여전히 더운 날, 엄마는 땀을 흘리며 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한 손에는 분홍색 보자기로 싼 텔레비전을 든 채로.

“아니 이걸 들고 버스를 타고 왔단 말이야? 엄마도 참. 대구서 여기까지 두 시간은 걸렸을 텐데......”

나는 미안한 마음에 괜히 신경질을 냈다.

“엄마도 참 청승이야. 뭐 하러 여기까지 온다고.”

“자식 갖다 주는 거는 하나도 안 무겁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도 입학금으로 다 쓴 뒤라 나는 엄마를 보는 게 편치 않았다. 회사를 다녔다면 엄마가 원하던 자개농은 아니더라도 화장대는 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는 연신 땀을 닦으며 옮긴 방이 어디냐며 텔레비전을 들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바로 길 건너야.”

내가 들겠다고 해도 굳이 마다하며 엄마는 텔레비전을 놓지 않았다.

작은 방 두 칸을 살펴본 뒤 작업실 책상에 앉은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림들을 쳐다봤다.

“사진 공부한다더니 웬 그림이 이렇게 많아?”

“학교 과제야. 예술은 서로 다 상관있으니까.”

엄마는 공부라면 책만 들여다보는 것이란 생각밖에 없던 사람이라 예술이라는 말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테레비가 오래돼서 잘 나올는지 모르겠다. 새 걸로 사기도 그렇고 일단 저거라도 봐라.”

자고 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장사를 해야 된다며 저녁만 먹고 다시 버스를 탔다.

“공부하느라 바쁠 테지만 집에 자주 와.”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엄마는 창문에 붙어 앉아 내내 손을 흔들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연결한 뒤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흐릿한 화면에 채널도 몇 개 나오지 않았다. 왠지 눈물이 났다. 이게 뭐라고. 이 무거운 걸 들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아 진짜. 작업실로 건너와 텅 빈 캔버스를 들여다봤다. 엄마가 쏟아붓는 노고가 헛수고가 될지도 몰라요. 차들이 지나가고 방은 흔들리고 견고하게 물리지 못한 틈들이 왈왈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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