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 23

by 열매

# 피터팬의 날개 그리고 연재



연재를 만난 건 ‘피터 팬의 날개’라는 서클에서다. 어느 날 이동현이라고 자신을 밝힌 3학년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업 시간에 내가 발표한 사진과 시를 보고 인상 깊었다며 한번 만나자고 했다. 학년과 학번과 나이가 뒤섞여 있다 보니 관계의 선후를 따지기 어려운 게 대학이다. 선배라면 선배려니 생각하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호프집에는 이동현 선배를 비롯해 세 명이 더 앉아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와촌에 사는 순한 최민수, 현태 오빠여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남자 세 명에, 여자 두 명으로 이루어진 이 모임이 무엇을 지향하는 서클인지 뚜렷하지 않았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뚜렷하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모임을 주도한 이동현 선배는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서클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사진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창작을 해보자고. 뭐든 해보자고. 결코 섞일 것 같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뭐, 그래보지요.’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모였으니 서클 이름을 정하자고 했고 현태 오빠가 ‘피터 팬의 날개’를 제안하는 바람에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그 후 간혹 모임을 가졌지만 멤버들 사이에 끈끈한 연대감이 생기진 않았다. 사진이라는 게 혼자 거리를 배회하고, 혼자 암실에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모두 자신만의 영역이 동그랗게 그려져 있었고 그 원은 쉽게 겹쳐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나쁜 건 아니라 저마다 개똥철학을 풀어놓기엔 좋은 모임이었다. 우리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전시를 한다든지, 사진 외에 그림이나 설치미술 같은 것도 어설프게 시도했다. 학과 수업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연재 때문에라도 나는 그 모임을 떠나지 않았다.

연재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와 쌍꺼풀 진 큰 눈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였다. 말투조차 조용하고 몽환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존 레넌의 연인 오노 요코를 닮았었다.

“있잖아. 이건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난 제사상을 보면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허스키하고 느린 목소리는 그녀의 긴 머리처럼 여운을 남겼다. 그녀는 목소리만큼이나 느리게 움직였고 그 모습은 마치 깊은 물속을 유영하는 사람 같았다. 담배를 많이 피웠고 밥 대신 술을 더 마셨다. 역광에 비친 그녀는 자코메티의 조각상처럼 길쭉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본 뒤로 그녀의 유영은 햇볕 좋은 날만 가능한 한가로움이란 걸 알았다. 어떤 불길이 그녀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걸까.

수업을 일찍 마친 오후, 연재와 나는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캠퍼스를 교외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학교 앞에는 가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얼마 되지 않는 술집과 식당에는 늘 학생들이 붐볐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테이블 옆에 있던 남학생이 호프잔을 들고 와 “같이 한잔 하시죠.”라고 하길래 나는 멀뚱히 바라만 보았다. 처음에는 요란한 음악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연재는 달랐다.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다. 말도 하기 싫다는 듯 담배를 쥐고 있던 손을 휘휘 저으며 가라는 시늉을 했다. 담배 연기가 그녀의 얼굴을 얼핏 가렸다. 남학생은 슬며시 웃으며 “에이 그러지 말고 같이 놉시다.”라며 연재 옆에 앉을 태세였다. 그러자 연재의 무엇이 폭발하듯 튕겨 나왔다.

“저리 가라고! 이 새끼야!”

그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상대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마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늑대처럼 보였다. 놀란 남학생은 슬며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연재는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금 나른한 오후처럼 느려졌다. 광기로 번뜩이던 푸른 불꽃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


여름 방학이 되자 연재는 서울로 돌아갔고 얼마 뒤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연재의 집은 예술의 전당 근처였다. 그녀를 키워낸 집에 들어서고서야 불쑥불쑥 터져 나오던 그녀의 혼돈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것은 본인은 알 수 없지만, 타인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지독한 냄새와 같은 것이다. 숨길 수 없는 불행의 냄새.

오래된 이층 집은 돌을 붙인 외벽 탓에 전체적으로 써늘하고 음산해 보였다. 게다가 제멋대로 자란 감나무가 집을 거의 가리고 있어서 더 그랬다. 아래층 창문으로 어스름한 불빛이 비칠 뿐 집은 대부분 어둠 속에 싸여 있었다.

알루미늄 손잡이가 달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70년 대풍의 집안 풍경이 펼쳐졌다. 꽃무늬 커버가 씌워진 낡은 소파가 있고 곧 수명을 다할 것 같은 전등불이 흐릿하게 켜져 있는 거실. 화사한 그림이나 액자 하나 없는 썰렁한 거실이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연재가 정면에 보이는 방문을 향해 말했다.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껌뻑이는 눈으로 연재와 나를 쳐다보는 두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 집과 거의 한 몸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멈추어버린 시간처럼 굳어있는 얼굴. 다시 조용히 문이 닫히고 연재는 나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아래층에는 외할어버지와 외할머니, 엄마가 지내고, 윗 층에는 나와 동생이 살아.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올라가자. 엄마는 오늘 늦게 오실 것 같아. 내일 인사하면 돼.”

연재는 내일 아침에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 줄 테니 기대하라고 했다. 나는 라면을 먹는 내내 집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단단한 침묵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음울하고 비밀스러운 침묵.


연재의 방에는 침대와 책상 밖에 없었다.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짐을 옮긴 탓에 책상 위에는 책 한 권도 놓여있지 않았다. 이사 나간 집처럼 썰렁한 데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둥글게 뭉쳐진 먼지가 침대 근처에 뒹구는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돌돌 말린 팬티가 있었다. 방치된 방. 어떤 식으로든 있기 마련이 삶의 생기가 이 집에는 없었다.

연재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방에서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그나마 밤바람이 간간이 불어 들어왔다. 어떤 이야기 끝이었을까 연재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셨어. 한때는 그랬지.”

연재는 어두운 창밖을 쳐다보았다.

“몇 년 전에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어. 벽에 온통 글을 적어 놓았더라고. 빈 틈 없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의처증이 심해진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 엄마를 의심하고, 다투고, 싸우고.”

연재의 집이 무엇으로 단단해졌는지. 이 침묵이 무얼 말하는지. 뭉쳐진 먼지 덩어리가 왜 저리 뒹굴고 있는지. 연재가 왜 폭발적인 분노를 일으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 안의 어둠이 더 지독해지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연재는 한동안 자신의 나체를 찍는데 몰두했다. 유령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이 흑백으로 찍혀있었다. 풀어헤친 긴 머리로 인해 그녀의 사진은 더욱 음산했다.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면 표현되지 못할 그녀의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 시절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안의 단단한 침묵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연재를 인도에서 만났다. 나는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고 연재는 타고르가 세운 예술학교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인도여행을 했는데 그 뒤 정말 빠져들었다고 했다. 인도의 태양이라면 그녀의 음습함을 바짝 태워줄지도 몰랐다. 제 자리를 찾은 듯 사리를 두른 모습이 잘 어울렸다. 우리는 뉴델리의 어느 호텔 로비에서 짜이를 마시고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한 뒤 헤어졌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삶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느리고 몽환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대학 시절 알 던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와 헤어진 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인도 북부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해바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 땅을 지나갔다. 낮과 밤. 문득 그녀의 집이 떠올랐다.

“잘 가. 학교에서 봐.”라고 한 뒤, 연재는 다시 검은 집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불어 감나무 잎이 흔들렸다. 그만큼의 그림자가 돌벽 위에서 따라 흔들렸다. 연재가 문을 닫자, 현관 불도 꺼졌다. 감나무는 아주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황색 불이 켜진 창문으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푸석한 머리와 축 처진 어깨선이 검은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다. 여자의 뒤쪽으로 오래된 자개장이 조금 보일 뿐, 그뿐이다. 그런데도 내게는 고약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여자가 내게 뭐라고 말을 할 것 같아 갑자기 두려웠다. 그러나 여자는 창틀에 손을 얹고 이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연재의 엄마. 그녀들은 저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무슨 말을 서로에게 건넬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러나 내가 정말로 그것을 궁금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차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해바라기밭을 지나며 지난 기억을 그 위에 피워냈다.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주로 흑백의 영상이 떠올랐다. 흑백사진을 많이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진들로 인해 어둠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회색의 감정들.

자신 속에 끓어오르는 불꽃과 화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밤의 도로에 드러누워 소리를 질렀다. 밤을 새워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을 하며 어둠이 익숙해졌다. 다음 날 눈부신 태양 아래서는 현기증이 났다. 어쨌든 나는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점점 세상의 가장자리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 시간들은 고독했고 달콤했다. 또한, 그 모든 혼돈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에서 위로를 받았다. 날 수 있는 날개는 아니었다. 그저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무언가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마 연재도 그랬을 것 같다. 피터팬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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