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처럼 타오르는 건
고독 속의 시간은 밀도를 더해가고 밤마다 촛불처럼 타오르는 건 오직 나뿐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정해 언니와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없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불안감이 아랫배를 누르며 멈추지 않은 진동을 일으켰다. 나는 여기 멈춰 서서 무얼 하고 있나.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럴 때면 규칙이 주는 안정감이 그리웠다. 그러나 용케 그 불안을 이겨내면 미처 맛본 적 없는 자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의 의무에서 벗어나 내면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영감을 따라가는 밤이 펼쳐 보이는 세계. 오로지 나 혼자로 충만한 그런 세계 말이다.
나의 하루는 단순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문방구 앞 의자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이제 곧 아이들이 들이닥칠 시간이다.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을 정돈한 뒤 고된 몸이 귀찮은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트럭이 지나가고 먼지가 일고, 할머니는 느지막이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잦아들지 않는 먼지 사이로 할머니는 점점 소멸하는 것 같다.
나는 자취방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소나무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길 끝에 넓은 배나무밭이 있었다. 나무들은 경사면을 따라 심겨 있어서 꽃이 필 때면 진격하는 군대처럼 아래로, 아래로 온통 흰 꽃뿐이다. 순수하고 아련한 꽃들. 나는 그곳을 비밀의 화원이라 불렀다. 새들이 날아와 풀 섶을 헤집고 벌들이 흰 꽃을 희롱하고,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작은 벌레들이 거주하는 곳. 나는 햇볕을 쬐다가 풀잎을 뜯어 휘휘 날리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와 문방구와 슈퍼마켓을 빼면 도로를 따라 보이는 건 과수원과 논밭이 전부이다. 한 번은 슈퍼마켓을 지나면 무엇이 더 나올까 싶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별반 다를 게 없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자전거 옆으로 바짝 붙어 지나가는 차들이 무서워 얼마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다 어스름해지면 비로소 정신이 맑아지며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이니까.
“새벽 1시를 알려드립니다. 뚜뚜뚜 뚜~”
Art of noise의 Moments in Love.
‘전영혁의 음악 세계’는 새벽 1시에 시작했다. 평소 잘 들을 수 없는 음악들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으로 록과 재즈, 프로그레시브, 헤비테탈이 주 레퍼토리였다. 오타쿠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진행자의 목소리. 그는 냉소적이고 건조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밤마다 나는 그의 목소리와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아주 혼자는 아니라는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정수 또한 필요했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에는 그런 위대한 정수가 담겨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게 온전히 몰입한다는 것, 내 속에는 표현되길 기다리는 감정이 있다는 것. 더 이상 그것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성이 잠들고 직관과 감정이 풀려나는 시간 속에서.
우선은 텅 빈 캔버스를 쳐다본다. 마음 가는 대로 선을 하나 긋는다. 그것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처음의 선에 이어 또 다른 선을 긋는다. 무언가가 되려는 선은 더 뻗어 나가려 꿈틀댄다. 나는 화분을 그리지 않았고, 석고상을 그리지 않았다. 풍경은 더더욱 그리지 않았다. 대부분 떠오르는, 혹은 떠내려오는 선을 잡아 화면 위에 설핏 그리기 시작하면 점차 하나의 형태로 귀결되었고 그건 대부분 무표정한 여자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보라색 치마를 입고 권총을 겨누던 그 여자의 또 다른 얼굴 같았다. 선들은 우아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팽팽하게 끊어지거나 급작스럽게 휘어졌다. 그러나 나는 수정하지 않았다.
새벽 3시, ‘전영혁의 음악 세계’의 엔딩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Jethro Tull의 Elegy.
쓸쓸하고 장엄한 일생을 마친 어떤 사람의 뒷모습 같은 음악. 그에게만 보이는 길 앞의 빛.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으로 퍼지는 기쁨. 그 같은 음악이었다.
이제 선들이 나눈 구획을 따라 물감을 칠한다. 빨강과 초록, 혹은 주황. 색들은 너무 강렬하여 서로를 위협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끝내 양보하지 않는다. 나는 우아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그린 그림은 팽창한 푸른 핏줄처럼 두드러지고 긴장을 놓지 못했다. 그뿐인가. 승화되지 못한 감정의 빛깔이 분노하고 튀어 오르고 심지어 으르렁거렸다. 어쩌면 그 서툰 표현 속에 진짜 감정이 고여 든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창밖으로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나와 희미해진 가로등 불빛 속으로 걸어갔다. 이슬 맺힌 풀잎이 종아리를 적시고, 잠 없는 노인의 기침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렸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다고 말해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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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석 장을 화실 벽에 세웠다. 매번 캔버스에 그릴 수 없어 이번에는 빳빳한 종이에 그린 것이다. 여자의 얼굴과 기이하게 몸이 꺾인 누드였다.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그림 앞에 서서 한참 바라보았다. 그가 사진 수업에서처럼 내 그림을 평가하지 않기를 바랐다. 사진 수업에서는 칠판에 붙여놓은 사진을 보고 학생들이 돌아가며 평을 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말은 얼굴을 붉히게 했고, 어떤 말은 내 의도를 전혀 모르는 소리였다. 자신을 보호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한 수업에서 담당 교수는 내 사진에 대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자기감정에 함몰되어 있다니. 이 사진에는 사회에 대해 어떤 메시지도 없어.” 그날 나는 울고 말았다. 여학생들은 사진 합평이 끝나면 화장실이나 구석진 곳에서 울거나 담배를 피웠다. 알을 깨고 나오게 하려는 충고라는 건 알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늘 마음이 얼얼했다. 그러나, 그림에 관해서라면 나는 오로지 이해받기만을 원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그림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취미반 수업을 듣고 있던 세 명의 아줌마가 선생님 뒤편으로 쪼르르 몰려와 내 그림을 구경했다.
“어머, 젊으니까 확실히 감각이 다르네.”
“뭔지 모르지만 인상적이야.”
그들은 몇 마디 쑥덕거리더니 다시 자신의 이젤 앞으로 가 꽃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은 커피를 한 잔 따라오더니 다시 그림 앞에 섰다.
“네 마음이 얼마나 건조한지 보이네. 허무하고 황량해. 하지만, 잘했어.”
‘잘 그렸어. 도 아니고 잘했어.’라니. 선생님은 그림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는 나의 행위에 대해서만 칭찬해 주었다.
“내가 말이야. 대만에 유학 갔을 때 조그마한 자취방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늘 홀딱 벗고 있었어. 그때는 미친 짓을 많이 했지.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것들이 요동치지 않나. 젊은 시절엔 누구나 그렇단 말이지. 그러니 뭐든 마음대로 해보라고.”
선생님은 푹 꺼진 소파에 가서 앉았다. 흰 턱수염으로 인해 그는 화가라기보단 어부처럼 보였다. 나도 따라 그의 앞에 앉았다. 그는 세상에 중요한 게 뭐가 있겠냐는 얼굴로 다소 풍자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럼에도 화실 한쪽에 장자나 화엄경 같은 책들이 꽂혀 있는 걸로 봐서 그 또한 오랜 세월 무언가를 찾아 헤맨 듯했다.
“나는 자네가 부럽네.”
선생님은 몸을 소파에 기대며 말했다.
“네? 왜요?”
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나중에 말해 줄 테니. 다음 주에는 비와 바람, 그리고 태양을 그려오도록 하지. 자네가 생각하는 비와 태양 말이야.”
내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늘 이 정도에서 끝났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나는 화집을 들춰보거나 취미반 아줌마들의 그림을 구경했다. 어떤 권위도 내세우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나는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수업료를 내지 않았고 그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의 그림 수업은 아무런 조건도 요구도 없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는 것에 무언의 합의를 한 셈이다. 무엇보다 나는 권위적이지 않은 어른과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 좋았다.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어른.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잘했어’라는 한 마디가 내 앞을 비춰주는 작은 불빛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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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나의 영어 선생이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내게도 다른 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 앞에 있는 영어학원에 가서 초급 회화반에 등록했다. 열 명 정도의 학생이 한 반이었고 우리는 “Let me introduse myself.”라는 말을 어줍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리 또래 거나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알렉스는 세 명의 원어민 강사 중 가장 잘 생겼고, 당연하게도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어서 수업이 끝나면 늘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나갔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소개하는 수업을 했는데, 내 차례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알렉스는 유난스레 호기심을 보였다. 멋지다. 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흘렀고 이제 짧게나마 그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나의 그림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그림 몇 점을 챙겨 호프집으로 갔다. 수업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알렉스는 다소 풀어진 태도를 보였고 괴상한 표정도 곧잘 지었다.
“고향이 어디야?”
“켄터키 주.”
나는 켄터키 주가 어딘 줄도 모르면서 그즈음 배운 “So awesome!”을 남발했다. 알렉스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그리고 이 시골 동네까지.”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그거 좋네.”
“석 달 후엔 떠날 거야. 태국에서 좀 지내다가 인도로 갈 거야.”
나는 진심으로 그가 부러웠다. 돈도 벌고 세계 여행도 하다니, 이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에는 인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 젊은이는 물론이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배낭여행을 떠나는 한국 젊은이도 많았다. 나는 언젠가 있을 여행을 위해서라도 영어를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세. 네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비슷하겠지. 내 마음이 이끄니까. 이제 그림을 보자.”
나는 그림을 펼쳐서 알렉스에게 보여주었다.
“So awesome! 넌 예술가구나.”
턱에 손을 괴고 그림을 보던 알렉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앞으로 숙이며
“하나 제안해도 될까? 이 그림을 내게 주면 내 수업을 공짜로 듣게 해 줄게.” 라고 말했다.
“와우? 정말이야?”
그렇게 해서 알렉스와 나는 호혜성의 원리에 따라 각자의 재능을 서로에게 선물했다. 알렉스는 나의 그림 중 푸른 색이 많이 들어간 여자의 초상화를 선택했다. 최초로 나의 그림을 누군가에게 준 순간이었고 나는 내 그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기뻤다.
“네 그림에는 날것의 감동이 있어. 무언지 모르게 마음을 움직이게 해.”
그리고 나는 알렉스가 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공짜로 수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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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비를 생각했다. 어떻게 비를 표현해야 하나.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시작되고 Art of noise의 음악이 맥박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밤의 핵심으로 다가갈수록 나의 존재는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는 것 같았다. 빈 종이를 바라보며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밤은 막막하다. 트럭이 지나가며 집을 한 번 후드득 흔들었다. 그들은 밤을 달려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보일 뿐 다른 빛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새벽 2시가 넘으면 트럭도 뜸해진다. 이제 나와 소실점을 향해 뻗어 있는 밤의 도로뿐이다. 나는 천천히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하얀 중앙분리선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지점.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면 내가 빨려 들어가는 것도 같고 반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사라지는 저곳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있을 테지만, 그다지 화려하거나 아늑하진 않을 거라고. 혼자 걷는 시간이 많겠지만 다정한 것들이 가끔 곁에 있을 거라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경이롭진 않지만 놀랄 만할 거라고.
끝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지 못했지만 어슴푸레한 곳으로 향하다 보면 내게 주어지는 것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걸 모험이라면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얼 찾아가는지 알지 못한 채 찾아 나서는 것일지라도.
절대 반지나, 먼지가 묻은 신비한 책이나, 보물 같은 것은 아니다. 나를 유혹하는 것은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빛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뒤로 돌아섰다.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 어딘가에 있는 소실점으로 향하는 하나의 선. 불확실함이 주는 희망. 그리고 매혹.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비와 바람과 태양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