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고해상도 패턴 인식기?

책 I 장강명 '먼저 온 미래'

by 청귤

워터파크에 왔다. 여섯살 둘째가 신이나서 토끼 그림이 그려진 안전조끼를 입고 유아풀을 헤집고 다닌다. 물줄기 사이로 미끄럼틀을 여러번 타더니 이 공간이 제법 편안해졌나보다. 이곳저곳 잘 안보이던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입구 계단 옆 가장자리에 자기 종아리 높이만큼 위로 솟구치는 작은 물기둥이 신기했나보다. 아이가 손으로 구멍을 막자 물기둥이 사라졌다. 손을 치우면 다시 볼록볼록 올라오는거에 빠져 여러번 반복하더니, 아빠를 호출한다. 여기 물구멍을 막고 있으면 자기가 저기에도 막겠다고. 자기 발목까지 차오른 물을 첨벙첨벙 차면서 유아풀 곳곳에 물기둥마다 손을 데본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만의 놀이를 만들어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 안에 규칙성을 발견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제어해보고 싶은 욕구는 우리 인간 안에 타고 나는걸까? 호기심이 인간 고유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질문이 떠올랐다. 바둑을 두는걸 넘어서 이제 바둑이라는 게임을 만드는 지능으로 진화하려는 AI가 언젠가 인간의 호기심을 흉내낼 날이 올까?


장강명 작가의 신작 '먼저 온 미래'는 그간 인공지능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들었던 복잡하고 산만한 생각들 가운데 무엇이 진정한 축이 되어 세상을 바꿀것인지 한꺼풀 더 깊게 상상하게끔 해주는 책이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산만함과 혼란이 남아있지만, 몇가지 물음들에 대해 정리해봤다.


1. AI는 인간보다 창의적인가?

책에 소개된 바둑기사들에 따르면, 알파고의 바둑은 기본에 가장 충실한 수, 정석에 가깝다. 어마어마한 계산 능력으로 인간은 패턴 인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의 수들을 처리하고 판단한다. 이젠 많은 바둑기사들이 초반 몇십수는 인공지능의 기보를 외워 둔다고. 이를 통해 고수들에 비해 부족했던 초반의 포석의 한계를 극복하며, 전체 바둑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다. 반면, 초반 포석에서 드러나던 개성과 자기 표현의 다양성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을 둔다'는 말은, 지극히 인간적이게도 낮은(?) 해상도의 패턴 속에서 선명하지 않은 영역을 감정, 비유, 추상적인 언어를 담아 표현한 것과도 같게 되었다. 과거 형세 판단의 모호함에서 풍성한 이야기가 더해지고 만화와 같은 캐릭터들이 자라났다면, 인공지능이 생긴 이후론 구름이 걷어졌고 산신령이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모호함이 사라진 자리에 정량화된 숫자가 놓여있고, 그것이 가리키는 승률을 따라 둔 수가 인간에게 가장 '창의적'인 수가 된다.


2. AI가 예술에 대한 개념 바꿀것이다?

챗GPT의 지브리풍 이미지 사태로 인해 창의성과 고유성 같은 인간의 가치가 훼손당한것 같아 분노하는 이들이 있다. 인공지능 발전에 예술은 분노를 넘어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과거 조성음악의 한계에 갇혀 있던 클래식이 현대음악으로 방향을 튼것처럼 말이다. 존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사진이 출현했던 시기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회화작품에서 화가가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에 비해, 사진에서 사진사의 구도와 셔터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사진의 주변부 모서리에서 회화에선 좀처럼 등장하지 않던, 그간 권력 계급에 비켜나있던 이들을 비춰준다. 우리의 인식 필터에 걸러졌던 이들이 다시 우리 시야로 돌아온다.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과 감정을 일어난다. 그렇게, 개별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담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진은 자연스레 고발, 정치, 문화적인 성격을 띌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 감각(시각)의 패턴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보는 행위가 실은 뇌에 의한 주관적으로 선택되는 필터링의 결과라고. 각자 머릿속에 재생산된 인식이 현실(물질세계)를 왜곡하는 과정이, 회화에서는 화가와 관람객의 눈을 통해 두번 일어나는 셈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해상도를 가진 우리의 시각이 낮은 해상도의 인상파 그림이나 왜곡된 그림 조각의 초현실주의를 수용한 것이 자연스러웠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회화는 생존했고 지금 우린 그 변화의 결과물을 보고 있다면, 이젠 AI가 초래할 새로운 변화를 보게 될 위치에 서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화가, 아예 사진 작가로 전업한 화가, 다른 화풍으로 변화를 시도한 화가 등.. 150년전 여러 형태의 시도들이 뒤섞이며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념도 뒤흔들리게 될까. 며칠전 AI를 이용한 음원생산 시스템의 재즈 음악을 들어봤다. 몇분 지나지 않아 조용히 껐다. 만약 카페에 뭔가 몰입하고 있었다면, 이정도 수준의 음악이 큰 대수였을까? 어쩌면 훌륭한 인간 예술가와 카페 배경음악을 생산하는 기계 예술가로 나뉘어지는 모습부터 보게 될지 모른다.


3. 예술을 넘어서, AI는 세상의 현실 인식을 바꿀것이다?

SNS가 출현한 뒤로 공론의 장이 세분화되고 파편화되면서 사람들간의 소통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양쪽으로 나뉘어진 세력은 과거엔 가려져있던 양극단을 표면위로 올리며 전에없던 정치계급과 갈등 문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기술의 진보는 또다른 경제적 진보를 이끈다. 인공지능의 이익을 누리는 공급자가 생기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이 시스템을 규제하는 심판자의 견제 속에서 변화가 출렁이며 새로운 소비자가 형성된다. 결국 각자 위치에 서있던 인간들의 욕망과 불안이 시대의 운과 우연들로 뒤엉켜 새로운 길을 내고, 그렇게 온 길은 되돌아갈 수 없다. AGI가 출현하게 되면 우리 생에 그걸 보게 될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때론 공급자들 틈에 껴서, 때론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그게 내 삶에 미칠 영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알수 없는 불확실성을 안고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달라진 세상이 와있게 되는걸까? 세상의 게임의 룰이 변화했고, 좋은것 옳은것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고, 인간다운 가치라 여겼던 것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단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경제적 진보에 뒤따르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진보가 일어난다. 진보가 폭넓은 사람들을 위해 작동되게끔 만드는 노력이 뒤따르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AI가 새롭게 열어제치는 시대에 사회적 진보라는게 작동할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듯이 장강명 작가는 과학기술의 통제를 마지막장에 길게 할애하고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 이득을 얻고 소비자로서 혜택을 누리고 싶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는 대중들은 앞에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진보로 가는 울퉁불퉁한 길의 멀미를 고스란히 감당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4. 코칭은 어떻게 달라질까?

바둑, 스포츠와 달리 코칭은 목표를 정량화할 수 없다. 인간의 성장, 변혁, 공명을 어떻게 기계에게 가르칠건가? 절대적 규칙이 없으니 자가 학습은 불가능하다. 대신 인간의 코칭 데이터를 넣어 강화학습하면 패턴을 습득할 수 있다. 바둑기사가 알파고의 기보를 보고 배우듯, 인간 코치도 수준높은 AI코치를 이용해 훈련이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으로부터 새로운 대화 기법 뿐만 아니라 성장 패턴을 배울 수 있다. 다만 스포츠와 달리 승패가 모호하고 인간의 감정, 공명의 변수가 존재하므로, 이 기법이 잘 통하는지 안되는지 인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어쩌면 회사에서 신사업 전략을 짜는 것도 비슷한 입장이다. 데이터화되지 않은 고객과 시장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변수를 감안한다면, 과거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의 사업 전략을 검증할 인간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처럼 많은 수는 아니겠지만.


코칭 얘기를 좀더 하자면,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재의 챗봇은 코칭의 맥락적인 대화를 하는 수준을 넘었다. 의문은, 뛰어난 컴퓨팅 파워를 가진 복잡한 신경망 구조로부터 인간의 직관과 공명을 창발할 수 있는가 이다. 창의성, 호기심과 마찬가지로 직관, 감정, 공명은 인간에서 조차 어떻게 작동되는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호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건 아니다. 코칭 대화를 하면서 고객을 주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분간할 수 없는 영역에서 떠오르는 질문. 그걸 낡아채 던졌을때 고객입장에서 와 하는 성찰 질문이 분명 존재한다. 그 질문을 외우거나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그 질문을 해야할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난 그 답을 모른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때가 있을 뿐. 어떤 패턴으로 설명하려 들면 들수록 오히려 그 질문의 힘이 희미하게 사라지는것 같다. 또다른 측면으로, 감정, 공명 얘기를 하려면 몸(육체, 물질)을 빼놓을 수 없다. 대국에서 알파고의 기세를 읽을 수 없어 불리하다던 바둑기사처럼, AI코치로부터 코칭을 받는 고객이나, AI의사에게서 진단을 받는 환자 또한 상대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그럴때 고객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창발에 미칠 영향은 얼마만큼일까? 기계와 고객 사이에 인간 코치가 있다면, 앞으로 그들의 코칭 역량은 AI코치 훈련을 통해 상향평준화 되어 있을 것이기에, 인간으로서 잘할 수 있는 분야 - 그게 감정이든 직관이든 공명이든 아직 그때까지 기계에 정복되지 않은 영역 - 에 점점 집중하려 들 것같다.


5. 우물안 개구리 프로야구 역대급 인기 역설?

간만에 잠실 야구 예매를 하려했다가 몰려든 수만명의 대기자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리그의 수준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차이가 남에도 역대급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분명한건 '탁월함'만이 사람들이 열광하는건 아니다는 점이다. 오랜 진화를 거쳐온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토리를 갈망한다. 인공지능이 각 분야에 도입되면 승패를 예측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기술 보완이 이뤄지며 전략의 편차가 줄어든다. 역량의 상향 평준화 시대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진화하는 속도는 매우 더디다. 오히려 탁월함은 기계에 맞겨두고, 우리끼리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을 나누며 즐기게 된다. 과거 낡은 화면으로도 농구대잔치 중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압도적인 피지컬의 선수들이 등장하기 전 기술씨름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했다. 모호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해설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충분히 몰입해쏙 스토리를 재생산하며 소비했다. 모호했다고 존재하지 않은건 아니다. 선수들의 투지, 승부욕, 팬들의 열기가 서로 되먹임하며 경기장을 채우는 에너지의 공명이 있었고, 패턴 인식의 달인 인간은 그 모호한 언어와 열기 속에서 찰떡같이 신호를 수신하고 다시 퍼뜨리며 공감대를 이뤘다.


6. 추론의 보완 vs 망각의 기술?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과거 책의 출현 덕분에 사람들은 기억의 의존도를 낮춘 대신에 깊이 읽기, 글쓰기를 통해 개성있는 관점을 재창조하고 내재화하며 장기기억을 강화하고 뇌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계산기 또한 인간이 작업기억의 부담을 줄이고 대신 수학의 추상적 추론에 좀더 시간을 할애해 개념적인 이해와 장기기억을 강화할 수 있게 도움을 줬으며, 반면 인터넷은 고차원적 추론에 써야할 뇌 자원을 피상적 작업 기억에 쓰고 작업 기억에 하중을 가함으로서 기능을 퇴화시킬 우려를 제기한바 있다. 역사상 어떤 지적기술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인간의 사고능력을 도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우리의 추론과 장기기억을 강화하는 보완재로 자리잡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망각의 기술로 존재할것인가. 지금 우린 답을 알고 있지 않지만, 그 영향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깊게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우리 의식에 미칠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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