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절대 들어오지마!' 개학을 앞두고 예민해져선가. 요며칠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 딸아이 방에 들어가려다 몇번 퇴짜를 맞았다. 드뎌 말로만 듣던 사.춘.기.가 현실로? 어제 자기전 열려있는 방문 틈으로 여유있게 책정리를 하는 아이가 보이길래 얼른 들어갔다. 똑똑.
"아빠, 아까 이멜 보낸거 답장 왔어?"
느닷없는 아이 질문이 날아온다. 백일장 공모전에 녀석이 입상을 했는데 학교에서 깜깜 무소식이길래, 주최측에 상장을 언제 배포하는지 문의를 했었더랬다.
"한시간 전에 보냈는데.. 게다가 오늘은 주말이라 그분들도 쉬는 날이잖어"
녀석. 별로 신경 안쓰는줄 알았는데.
금방 납득이 되는 표정을 하며 다시 책정리를 하는 아이를 지나 침대에 누웠다.
"아빠, 책장이랑 방 정리한거 봐봐. 깨끗하지?"
오후에 유치원생 둘째를 동원해 방에 어지럽게 쌓여있던 책들을 베란다 책장에 갖다놓고 한참 책상위를 쓸고 닦고 했던 터였다.
며칠전, 여름방학 계획표 A4 용지 위에서 발견된 잘레 벌레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방학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번 방학때 계획했던것 중에 모모 이뤘어?"
"어. 수영한거, 학원 빼먹은거, 그리고 한검능 시험 친거. 해외여행은 못갔고 동물도 키우고 싶었는데 못했고.."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워터 파크간거!"
아이는 물에 관한건 다 좋아했다. 둥둥 떠다니다 잠수도 하고, 물장구도 치고.. 서핑도 배우고 싶어 실내 서핑장 있는지 물어봤다. 예전에 다이빙 대회도 보러 가고 싶단 말을 했다.
아이 방안을 둘러보다 책상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사회 교과서가 눈에 띄었다. 경회루같은 넓은 연못 가를 펭귄 아빠랑 아이가 거니는 표지 그림이 귀엽다며 아빠한테 보여줬던 책이다. 5학년 2학기부터는 사회시간에 한국사를 배운다. 아이는 어릴때부터 한국사를 좋아했다. 며칠전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엄마가 점수 얘기해줬을때 기분이 어땠어? 으 망했다 라고 말했다던데?"
"어 맞어. 으.. 수학성적이었으면 혼났을거야"
"왜? 문제가 어려웠으니까 점수는 낮을 수 있지. 내용이 어른들 수준이라 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걸."
"그래도, 44점이 뭐야? 시험치고 나서 내가 얘기했잖아 확실하게 풀었던걸 보니 45점 이었다고. 그럼 반올림 하면 50점이었을거 아냐!"
"아하 50점이면 괜찮은거구나"
"그치. 1점 차이로. 아쉬워. 나중에 또 칠거야. 아주 나중에. 그땐 심화 말고 다시 기본을 칠거야. 100점 맞을거라구"
"한달반 넘게 매일 최태성 선생님 강의 듣고 외우고 한건 대단한거야.. 어른들은 벼락치기를 많이 하는데.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풀어낸게 더 어려운거야"
작년 여름 제주도에 한달간 머무르면서 한능검 공부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도전이었고, 그땐 원하는 결과도 얻었지만, 지금보다 어렸어서 옆에서 많이 봐줘야 했다. 한해가 지나고, 지난 두달동안 몰라보게 끈기있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했던 터라, 아이가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단 생각에 노력의 기억을 낮춰서 여기진 않을까 내심 신경쓰였다.
"아 몰라. 한능검 얘기하기 싫어. 다른 얘기해. 아빠 나 고양이 키우고 싶어."
박소영 작가의 '살리는 일' 책이 잇다. 고양이 집사로, 캣 맘으로, 동물권에 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포켓 사이즈로 읽기도 편하고 아이가 고양이를 좋아해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살리는 일' 책은 일어보니 어땠어?"
"어, 재밌어. 강아지 구조 장면이 젤 기억에 남아. 스릴 넘쳤어. 세마리 중에 한마리는 결국 못들어왔어"
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구체적인 부분을 읊는 녀석 표정이 생생하다.
어릴때부터 아이는 서사와 인물에 몰입했다. 반면, 난 구체적인 사건이나 캐릭터보단 연결된 흐름 속에서 메세지에 더 끌리는 편이다. 이 얘기를 해줬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다.
"구체적으로 어떤게 다르다는거야? 에를들면?"
전에 '살리는 일'을 읽고 난 뭐라고 기록을 해뒀는지 휴대폰을 뒤졌다. 읽어보니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난 작가의 공감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타고난 감정적 공감에 감탄했고, 동물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제한된 교감과 그 서클 바깥의 무의식적인 배척으로 이어질수도 있겠단 우려의 느낌을 받았더랬다.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사진찍어 뒀는데, 아이가 얘기한 강아지 구출기를 담은 페이지도 보였다. 녀석들 이름이 플라, 달리, 갈라였구나. 식용견으로 팔려갈뻔 했다가, 구출되어 예방주사를 맞는데 본능적인 두려움의 울음소리. 이 구절에서 아이와 난 아마도 같은 울컥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어부 그물에 걸린 거북이에게 의족을 달아주고, 오리 가족이 길을 건널때까지 차들이 멈춰서 기다리는 등 미담에 가려진, 인간의 위계적인 시각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작가의 문장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린 같은 걸 보면서도 비슷하고 또 다르게 소화하고 있었다.
"최재천 선생님의 '곤충사회' 책은 공감이 안돼. 왜 개미랑 민벌레를 연구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라면 고양이나 강아지를 연구할거야! 아 근데, 아빠, '아몬드' 책 버렸어?"
글쎄. 기억이 없다. 갠적으로 별로였던 책은 보통 알라딘에 팔거나 도서관에 기증을 하니까. 아마도 그 책도..
내가 갸우뚱거리자 아이가 말을 잇는다.
"도서부 선생님이 책을 고르라고 하셨는데, 안고른 애들한텐 '아몬드'를 주셨거든. 내가 젤 좋아하는 장르가 뭔지 알아? 바로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책이야. 그래서 난 이걸 골랐어. 참고로 젤 싫어하는 장르는 수학 관련된 책이야~"
아이가 내민 학습만화 책의 표지가 참 파랗다. 한동안 제우스와 올림포스 12신의 가계를 외우며 빠져있던 녀석에게 매우 익숙한 책이다. 반면, '아몬드'를 읽을 나이가 됐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보니 조금씩 청소년 소설쪽으로 관심이 이동하는게 보였다. 이꽃잎 같은 처음 들어본 작가들이며 학교 도서관에서 본 청소년 소설 제목들을 읊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는 아이가 낯설어 보였다.
아까 했던 케데헌 얘기를 다시 꺼냈다. 저녁먹고 나서 보려고 했다가 시간이 없어 다음으로 미뤘다. 아이는 이미 몇번 봤어서, 어땠는지 물어봤는데 대답이 시원찮길래 별로였나 싶었는데, 터놓는 속얘기는 전혀 달랐다.
"우리반 친구들 거의 다 봤을걸. 애들 다 좋아해. 난 스토리는 별로였는데 그림을 너무 잘 만든것 같애. 소리를 끄고 영상만 봐도 이해할 수 있을걸? 새우깡이랑 컵라면도 나오거든. 외국인들이 한국적인 것들을 보고 정말 좋아할까? 식당에 냅킨 깔고 수저 올려놓는것도 나와. 신기해 그런걸 이야기에 넣을 수 있다니"
"아빠도 외국 영화를 보다가 그 나라 특유의 문화가 나오면 언제 여행가게 되면 꼭 사먹어 봐야지,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날것 같애"
"식당에 냅킨 깔고 수저 올려놓는것도 나와. 신기해 그런걸 이야기에 넣을 수 있다니. 아빠는 언제 볼거야? 스포일러일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야. 처음엔 나 자신을 숨기다가, 나중엔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걸 찾아가는.."
문득 녀석은 어떤 쪽일까 궁금했다. 숨기는 편인지, 드러내서 찾아가는 쪽인지.
"난 숨기진 않지"
"그럼 나를 찾는 아이야?"
"딱히 그렇지도 않아"
"아빠가 볼때 우리 딸은 좋아하는게 분명한걸. 수영, 역사, 패션 그리기, 책, 스케이트 타기, 오래달리기.."
"아 아빠. 아까 티비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이 학교에서 몇반인지 몰라서 구박받는거 나왔는데, 여기서 질문, 난 몇반이게?"
"그건 너무 쉽지. 5학년 9반이지!"
"5학년 3반이잖아!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어?!!"
아.. 9반은 4학년때였지.
"18번?"
"16번이거든"
"아빠 너가 유치원때 햇살반-바다반-용기반도 다 기억하거덩!"
"아 그건 맞아"
"그럼 너도 아빠 다녔던 대학교 이름 맞춰봐. 회사 이름은?"
몸을 뒤척이니 누워있던 침대 부분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밤공기가 후덥지근하다. 점점 졸음이 몰려오는 눈을 하는 아이와 선풍기 사이로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문답하는 시간이 그저 좋다.
챗 GPT가 아무리 발전한들, 우리의 온기와 유전자의 동질감을 대체할 순 없다. 완전한 구조로 짜여진 프롬프트 없이도, 툭 던지는 말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그저 서로가 각자의 인생에서 어디쯤 서있는지를 확인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눈빛으로 지지해주고, 손잡아주고, 토닥여주는 시간.
"근데, 아빠가 똥실이라고 부르는게 왜 싫어?"
"아 그냥 싫어. 그냥 이름 부르라구"
"난 똥실이가 좋은데, 아님 똥주? 아 촉새? 미네르바? 클로이?"
6년전, 첫째가 지금 유치원생인 둘째만한 나이때 영상을 봤다. 요녀석이 첫째인지 둘째인지 헷갈릴 정도로 목소리도, 표정도 그리고 춤을 추는 행동도 둘이 닮아있고, 딸아이를 대하는 나의 말버릇도 그때나 지금이나 놀랄정도로 똑같다. 둘째 태어나고 엄마가 조리원에 있을때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춤 따라 하는 영상을 찍어 보냈던 그 애기가, 그새 부쩍자라 엄마랑 키가 13cm 차이까지 쫓아왔고, 생머리를 길게 해서 짧은 치마에 제법 멋부리는 케데헌 캐릭터 같은 아이가 되었지만, 내눈엔 여전히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노래부르는 똥실이 그대로다. 이번 주중에 딸아이랑 케데헌을 보면서 어떤 얘기를 나눌까. 어떤걸 공감하면서 다르게 느끼고 훗날 어떻게 기억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