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울해서 애 셋은 어떻게 키울래?

by 반짝이는책창

친정엄마가 말했다.

"너는 그렇게 우울해서 애 셋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2살 터울 남매를 키우며 뱃속에 셋째를 임신 중일 때였다.

신랑의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원치 않는 독박 육아를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신랑 얼굴을 겨우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아이 둘을 씩씩하게 키워냈으니, 셋째는 거저먹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출산이 가까워 오자 우울감이 극에 달했다. 둘째를 낳고 시작된 산후우울 증상이 미처 관리를 못한 채 셋째를 임신한 후에도 계속 이어진 것이다. 아이 둘을 이 악물고 키웠는데, 끔찍한 시기를 한 번 더 겪어야 한다니 두려웠다. 아이들에게 분명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가까이 사는 친정엄마가 만삭의 몸으로 두 아이를 케어 중인 첫째 딸이 걱정되어 오셨다. 나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어른과 대화 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쌓여있던 불안과 염려를 털어놓았다.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 중인 신랑을 하루 몇 분도 제대로 보지 못해 서운하다는 마음과 셋째 출산을 앞두고 오롯이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중압감이 무섭다고 주저리주저리 꺼내놓았다. 한참 말없이 듣고 있던 엄마가 긴 침묵을 뚫고 입을 떼셨다.



"그렇게 우울해서 아이 셋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이제 정신 차려야 할 때가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순간 나는 얼었다. 엄마의 말과 표정이 너무 차가웠다.

셋째 임신 소식을 전할 때가 떠올랐다. 뱃속의 셋째는 그 누구도 축하하지 않았다. 신랑도 친정엄마도... 심지어 나도. 선명하게 두 줄이 찍힌 임신 테스트기를 신랑에게 건넸을 때 '진짜? 또?' 하며 당황했다. 엄마는 '너 정말 괜찮겠니? 셋 키울 수 있어?'라고 되물어보셨다. 임신 테스트기를 보면서 내가 아이 셋을 키울 운명인가? 내가 과연 그럴 능력이 있는지 되짚어봤다.


아이 셋을 키울 능력이 없다면 어쩔 것인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라고 해서 포기하고 좌절할 것인가. 친정엄마도 신랑도 반기지 않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직 콩알만 한 셋째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나라도 반기고 환영하고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낳기도 전에 나는 아이 셋 엄마로 강인한 생활력과 반듯한 정신력으로 독박 육아를 이겨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버티며 그저 살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버티며 살아낸 시간에 감사하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포기하지 않고 40대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우울함 속에서 세 아이를 키워낸 시간 덕분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울어대는 아이 덕분에, 모든 걸 놓고 싶다가도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내 옷깃을 꼭 잡는 아이 덕분에 살았다. 그렇다. 우울해도 아이 셋은 키울 수 있었다.


이제 와서 내가 얼마나 우울했었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남들에게 도움 되는 훌륭한 양육법을 나누려고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버티고 살아온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울해도 아이 셋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혹시 아는가 나처럼 어둡고 우울한 시기를 지나는 아기엄마에게 도움이 될는지. 나는 쓰면서 지난날 고생한 나에게 칭찬과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



"40대를 맞이하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의 40대를 빛내보자."


"너는 꽤 괜찮은 엄마였어. 지난날을 자책하지 마."


"우울해도 아이 셋을 키워내는 네가 참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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