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아내가 오늘부터 1박 2일간 출장이라 세 자녀의 식사 챙기기는 내 몫이다. 방학을 보내고 있는 자녀 셋의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를 훌쩍 넘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여야 하니 무슨 반찬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일단 찌개 또는 국에 사용할 육수를 만들기 위해 냉동고에 얼려 놓은 조개를 꺼냈다.
육수로 사용할 조개를 꺼내 깨끗이 씻은 다음 물을 넣고 끓였다. 해감이 잘 안 된 조개라 조갯살을 일일이 뜯어내 조개 입과 살을 분리했다. 해감이 안 된 조개를 먹기 위해 조개입을 분리해 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손이 가는 일이지만 귀한 조개라서 버리기 아까워 육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무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다시마, 멸치도 넣어 진한 국물을 우려냈다. 이 육수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국물이 끝내줬다.
조개 육수를 끓이는 동안 달걀말이를 했다. 달걀 다섯 개, 참기름, 파를 넣어 휘젓은 다음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세 번을 나눠 구워냈다. 돌돌 말아서 먹기 좋게 썰어 놓았다. 기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식탁에 올려놓은 다음에 이번에는 오징어 볶음이다.
냉동고에서 일치감치 꺼내놓은 오징어 두 마리.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미림, 고추 어슷 썰기한 것을 함께 버물려 둥근 팬에 넣은 다음에 자근자근 볶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설탕도 듬뿍 넣었다. 양념이 오징어에 잘 베이도록 주걱으로 잘 휘젓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된장찌개. 호박을 작게 네모로 썰어 넣었고 무를 꺼내 투박하게 썰어 된장 한 숟가락과 함께 조개 육수물에 넣었다. 한 숟가락 맛을 보았는데 내 입맛에는 최고다.
그렇게 해서 아침 겸 점심으로 차린 밥상은 달걀말이, 오징어 볶음, 된장찌개.
막내가 제일 맛있게 먹어주었고, 입맛이 까다로운 둘째가 케첩에 찍어 달걀말이로 밥을 먹어 주었고. 그런데 첫째가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차린 밥상은 거들떠보지 않고 컵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는 게 아닌가. 아내의 심정을 알겠다.
두 시간 동안 주방에서 최선을 다해 반찬을 만들었는데 컵라면이라니....
저녁에는 무슨 반찬을 해서 먹을까 고민이다.^^
반찬을 만드는 동안 아이패드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최대한 독서를 하고자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책 읽을 시간 없다고 고요한 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 방학 동안 나를 비워내는 일 중 하나인 운동도 놓칠 수 없다. 집 근처 근린공원에 190여 개의 계단이 있다. 평상시에는 쓸모없는 공간처럼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다리 근력을 키우는 데에는 계단만큼 좋은 공간이 없는 것 같다. 아파트로 치자면 약 17층 높이의 계단들 오늘 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뛰어 올라갔고 걸어서 내려왔다. 마침 내가 운동하러 간 시간에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 서른 명이 단체로 집중훈련을 하러 왔는지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30분 정도 운동했는데 얼굴은 홍당무처럼 뻘게지고 숨은 헐떡거리고. 집에 와서 찬 물로 샤워를 하는데 무지 시원했다.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입에 물고 책을 읽는다. 몰입 독서가 따로 없다. 운동으로 정신을 맑게 하니 책 읽는데 집중이 저절로 된다.
아참,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는 10년 된 자동차 정기검사 때문에 자동차 검사소에 다녀오고, 자동차 부품 파는 곳에 가서 에어컨 필터, 와이퍼 세트를 사다가 손수 갈았다. 출근할 때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휴가 기간 중에 하나하나씩 해 두어야지 맘이 편하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치과 정기 치료, 건강검진도 차례대로 해야 한다. 오후 늦게 쯤에 원격업무시스템에 들어가 혹시 급하게 처리할 공문이 있나 확인해 봐야겠다. 베란다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최대한 에어컨 틀지 않고 자연 바람으로 지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