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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가을바람

by 이창수

구월 들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다. 아직까지 낮에는 무덥지만 말이다. 김훈 작가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경기도 편)에는 바람의 종류를 맛깔나게 묘사해 놓았다.


바람은 바닷물을 재우거나 흔들어 깨우거나 미쳐 날뛰게 한다. 바다는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마당과도 같다. 바람이 없을 때 해면은 거울과 같다.



물 위에 고기비늘 같은 자주름이 잡히면 실바람이고, 작은 파도가 생기면 남실바람이다. 파도의 대가리들이 부서지고 흰 거품이 일어나면 산들바람이고, 파도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옆으로 연대를 이루면 건들바람이다.



파도가 더 길어지고 흰 거품이 위로 치솟으면 흔들바람이고, 흰 거품이 파도의 전면에서 일어나면 된바람이고, 흰 거품이 대열을 이루어서 달려들면 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부서져서 물보라가 날리면 큰바람이다.



물보라가 심해져서 시야가 흐려지고 파도의 대가리가 휘어지면 큰 센바람이고, 흰 거품이 덩어리를 이루어 물 전체가 뿌옇게 보이면 노대바람이고, 큰 파도가 작은 파도를 때려 부수면서 달려들면 왕바람이고, 물거품과 물보라로 수면 전체가 뒤덮이면 싹쓸바람이다. (135~136)



바람도 심적 여유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다. 일요일 아침, 주차해 놓은 자동차가 방전되어 긴급 출동서비스를 부르고, 아파트 베란도 쪽 천장에 누수 현상으로 보이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잠든 세 자녀들 깨우고... 교회에서는 차량 봉사,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재정 관리. 집에 와서는 어머니 댁에 가서 잡초 정리. 땀 흘리고 이제야 찬물로 샤워하고 베란다 곁에서 가을바람을 느껴본다.



조급함은 불신앙의 표시라고 하는데... 기다려야 문제가 해결되고, 나중에 가서야 깨닫게 되는데 요즘 너무 조급하게 마음을 먹는다. 가을바람을 제대로 느껴보는 여유로움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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