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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Oct 24. 2023

교감의 명함

<종이의 신 이야기>라는 책은 디지털 시대, 사라지는 종이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장인 정신을 키워 가는 일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부터 9대에 걸쳐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까지 종이에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종이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자신을 알리는 도구인 종이 명함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곧잘 명함을 만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경우가 제법 있다. 선거철이 되면 많은 후보자들이 자신을 뽑아달라며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인사와 함께 명함을 내민다. 그 명함 한 장에는 많은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자신의 학력, 경력을 포함하여 당선되면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는 공약사항도 빽빽이 적어 놓기도 한다. 


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함도 자주 보게 된다. 주로 길거리에 아무렇게도 뿌려진 홍보용 명함이다. 신장개업을 해서 식당을 알리는 명함이거나 돈이 급한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대출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명함 크기의 종이들이 자동차 와이퍼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종이 명함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그럼에도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3년 동안 받은 명함을 얼추 세어보니 40장에 가깝다. 우리 제품을 사용해 달라는 명함부터 자신을 알리는 명함, 학교와 관련된 학부모, 운영위원, 지역 인사들로부터 받은 명함들을 차곡차곡 쌓아 집게로 모아 놓고 있다. 


"종이(명함)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본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이 이상으로 우리는 인쇄물의 재미를 전하고 싶습니다" 에토 기미아키(랜드스케이프 프로덕츠 디자이너)의 말이다. 


명함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명함을 만든 재료인 종이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디자이너의 말이다. 에토 기미아키가 고안해 낸 명함은 소재가 다양하다. 하늘하늘한 편지지가 명함이 되기도 하고 로고 서체도 대담하다. 폰트도 다양하다.


교감으로 재직하면서 받은 명함을 보니 투명 아크릴 재질로 되어 있는 극단 신예 상임연출가인 김상덕 님의 명함 외에는 대부분 크기도 재질도 비슷한 것 같다. 


파리의 빵가게에서 받아 온 종이봉투, 심지어 봉투를 열 때 잘랐던 종이조각, 다양한 종이 티백도 모아 두고 사용하는 일본 장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명함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의 종이 재료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오키나와에 갔었을 때 지인 선물로 도자기 접시를 사 왔을 때가 기억난다. 도자기 가게에서 접시를 정성껏 싸 주셨는데 포장지가 의외였다. 


바로 오래된 신문!


낡고 빛이 바랜 신문지로 접시를 싸 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그때 도자기 접시를 쌓던 포장지 신문 종이를 쓰레기 취급하며 버렸다. 물 건너온 신문지인데. 어떻게 보면 오래된 일본 신문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현재 내 명함은 그야말로 기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창수'라는 본질이 드러나 있지 않다. 

직위, 이름, 학교 주소, 직통 전화번호, 모바일 번호로 내 본질을 알릴 수는 없다. 


다만, 이메일 주소 대신에 내 블로그 이름을 넣었다는 것이 약간의 특징이라고 할까. 


참고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갔을 때 그의 명함은 이랬다. 


노무현 (주)봉하마을대표


전)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주)봉하마을 대표로 자신의 후반기 삶을 나타냈다고 하니 생각이 남달랐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교감, 교장이 아닌 무언가 나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명함을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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