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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수 Dec 17. 2023

존경받는 아버지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사춘기에 접어든 셋째와 어제도 한바탕 몸싸움을 했으니 말이다. 50대 아버지와 10대 자녀와의 싸움이라니. 부끄럽다. 


'조선의 아버지들'이라는 책을 읽고 기록에 남긴 글을 일요일 아침에 다시 읽어본다. 


조선은 유교 사회였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의 행동만 감시했다. '효성을 다하는가?' 이것만 문제 삼았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관심과 무책임 따위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많았다. 엄부(嚴父)가 넘쳐났고, 자부(慈父)는 드물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자녀에게 존경받았던 아버지들이 있었다면 믿겠는가?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황에게 중국 사신이 물었다. "조선 성리학의 계통은 어떠합니까?" 이황의 대답은 이러했다. "정몽주는 길재에게 전하고, 길재는 김숙자에게 전하고, 김숙자는 그의 아들 김종직에게 전하고, 김종직은 김굉필에게, 김굉필은 조광조에게 전하였습니다."(93)

 

김숙자는 15세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아들 김종직은 아버지를 깊이 존경했다. 아들이 존경하는 아버지다!

 

구두쇠에 가까웠던 이익. 그는 일체의 오락을 피했다. 담배 피우는 것도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며 당연히 반대했다. 그의 아들은 이맹휴, 이병휴가 있었고 손자 이삼환은 실학을 집대성한 이다.

 

사화를 통해 가문이 초토화되었던 유계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가십훈'을 통해 자녀들을 올곧게 키웠다. 유희춘이 그의 아들이다.

 

천재 예술가 김정희는 서자 김상우를 특별히 아꼈다. "난을 치는 잎은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우니라.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정취가 있은 다음에야 제대로 되는 것이다." 독서와 학문이 부족하면 그림에든 글씨에든 선비의 기상을 담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희의 난을 치는 삼전법은 아들 김상우와 집안 조카인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을 통해 후세로 이어졌다. (165)

 

이순신은 탁월한 문장가였다. 18세기 북학파 이덕무는 그를 조선의 명문장가라고 했다. 이순신은 자녀 양육관에 대해 이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식을 가르치려고 들다 낭패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순신은 결코 그런 적이 없었다. 절조를 지키며 몸가짐을 꼿꼿하게 견지했다. 이순신의 자손들 가운데서 나라의 동량(棟梁, 대들보)이 여럿 나왔다. (189~190)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는 이순신이 큰 그릇임을 알아본 재상들이 있었다. 유성룡, 이원익, 정탁, 김명원, 이항복 등이 그를 전후좌우에서 발탁하고 지지해 주었다.(180)


첫째가 스무 살의 나이에 공직에 입문했다. 감사하다. 교육계가 참 좁다.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나부터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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