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방송은 같은 듯 하나 다른 점이 더 많다고 한다. 공통점 한 가지는 영화감독이나 방송 PD 모두 한 작품을 기획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 안에서 교감은 중간 관리자이면서 동시에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책임지다'라는 말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맡아 안는다는 말이다.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감독 같은 경우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계획을 수정하고 마감 기일 연장을 제작사에게 요구한다. 작품에 대한 책임 때문에 그렇다. 교감도 학교 일을 운영하면서 수정해야 할 계획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예산 사용이나 행사 자체를 변경하겠다는 계획안을 선생님들이 수시로 올린다. 대부분 결재를 승인한다. 승인한다는 것은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이 있기까지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수고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군에서(2년 4개월 복무) 몸으로 배웠다. 돌이켜 보면 참 값진 경험이었다.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바야흐로 1996년 9월이었다. 당시 나는 약관의 나이를 막 벗어난 24살이었다. 어깨에 녹색견장과 60만 촉광의 다이아몬드(속칭 밥풀떼기) 한 개를 단 '대한민국 육군 소위'였다. 국방부에서 내게 부여한 보직은 소대장 역할이었고 산악정예특공부대인 703 특공연대 1대대 3중대 4 소대장 보직이었다. 지금은 부사관 편제로 개편되었지만 당시 병사 12명에 부사관 1명, 장교 1명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참고로 703 특공부대는 전쟁이 일어나기 D-7일 전에 북한 지역으로 침투하는 부대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새벽 어느 날, 갑자기 진돗개 1호가 발령되었다. 연병장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트럭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진돗개 1호란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한 국군의 방어 태세다. 최고의 경비태세며 지금까지 세 번 발령되었다고 한다. 1996, 2010, 2013년) 방탄조끼, 수류탄, 탄약 등등을 수령받고 강릉으로 가는 트럭에 몸을 맡겼다.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 때 나를 비롯한 703 특공부대원들은 무장공비들이 침투하고 도주했던 경로인 모전리 마을, 칠성산 만덕봉, 오대산, 계방산, 향로봉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늘 전투의 한가운데 배치 되었다.
1996년 9월부터 작전이 종료된 12월까지 703 특공부대원들은 많은 분들이 죽고 다쳤다. 그때 온몸으로 깨달았다.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대장으로서 부대원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 책임이라는 것을.
'나를 따르라'라는 구호는 육군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한 보병학교의 구호였다. 초임 장교들은 '나를 따르라'라는 구호가 적힌 부대 마크를 전투복에 늘 착용하며 지냈다. 늘 책임을 생각하라는 뜻에서.
지난 코로나 3년을 지내면서 교사들 사이에서 학교 관리자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판단을 유보하는 관리자들의 모습에서. 교사들은 관리자들이 관리자답기를 바란다.
책임지고, 결정하고, 일하는 관리자를......
2021.3.1. 자로 교감에 취임하면서 쓴 취임사를 찾아보았다.
"교감이라는 역할은 고독한 자리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교감은 결코 교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며 여러분과 함께 좋은 학교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취임사 중에서)
점심시간 때 한 아이가 친구들끼리 놀다가 앞 니 두 개가 부러진 일이 일어났다. 보건실로 올라갔더니 이가 부러진 아이가 앉아 있다. 학부모도 지금 오고 있다고 한다. 1시간 이내에 치과에 가야지 신경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한 개의 이는 100% 살릴 수 있고 다른 한 개의 이는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학교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