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고난의 하루였다.
학교에 출근하면 정해진 시간에 교문 앞에 나가 학생들을 맞이한다. 나의 출근 루틴이다. 교통 봉사를 하시는 분들 뵙고 고맙다고 인사드린다. 고사리 같은 자녀 손 붙잡고 등교를 함께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만난다. 그중에 한 분의 학부모님이 눈에 밟힌다. 자녀의 손을 붙잡고 횡단보도를 건너오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애잔함이 스며든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학부모님이다. 이 분에게는 자신의 자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십자가일 수 있겠다 싶다.
이번주는 기독교에서는 고난 주간으로 지킨다.
보통 십자가는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액세서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희생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역사적으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나무 형틀로 만들어진 십자가는 원래 로마시대에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십자가 하면 죽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왜 죄인이 아님에도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생각하면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십자가를 진다'는 표현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에 자신이 대표로 부담을 짊어진다는 의미로 '십자가를 진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희생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반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은 평생 자신 곁에 자녀를 두고 돌봐야 하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끝까지 자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게다.
그렇다면 '교감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교직원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대신 짊어지고 묵묵히 수행해 가는 모습일 수 있겠다. 학교 민원, 사안이 터졌을 때 전면에서 나서서 해결의 의지를 가지고 나가는 모습일 수 있겠다.
(사안 처리 하느라 교감이 끙끙거려도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 교감은 적응해야 한다.)
"함께 하면 어깨의 짐도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짐도 가벼워진다"
학교폭력은 학교 밖에서 방과 후에 일어난 사안도 학교에서 처리해야 한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난 경우라면 그나마 목격자가 있고 담임교사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사실 확인이 빠르고 정확하다.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학부모가 개입될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교감이 해야 할 일은 명료하다.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큰 소리로) 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가 아니에요"
"저번에 저 아이는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도 했다고요. 그런데 저희는 담임 선생님께 얘기하지 않았는데.. 속상합니다"
대게 학부모님은 학교 측의 연락을 받고 성을 내고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다. 일차적으로 누군가에게는 감정을 쏟아낸다. 될 수 있으면 교감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감정을 받아주는 역할을 해 주면 선생님들께 큰 힘이 된다.
얼마 뒤 다른 일로 한 통의 전화가 교무실로 걸려 왔다. 교감을 찾는 전화다.
"교감 선생님, 학부모들 교문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할 수 없나요? "
난감한 전화다. 일단 자초지종을 들었다. 왜 마음이 불편한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마친 뒤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협의했다. 먼저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을 말씀드렸다. 잠시 뒤 한 선생님께서는 학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부터라도 시도해 보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감사했다.
오늘은 온 교직원들이 수요일을 맞이하여 학교 밖 연수를 나가는 날이다. 사안과 민원으로 인해 교감, 해당 담당자들은 학교를 지킨다.
(퇴근 시간 뒤에도 학부모 상담은 계속 진행되었다)
나의 십자가를 지기로 했다~!
(함께 십자가를 져 주신 선생님들, 감사해요)